■ 네티즌들 선처 호소
"(아버지가) 학원에 술 먹고 와서 나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렸다. 난 잘못도 안했는데, 너무 창피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아빠 술 먹고 장난 아니다. 나 학원 간 사이에 술 먹고 집을 다 부쉈다. 도저히 아빠랑 살 수 없다. 모든 걸 정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으면 좋겠다"
"난 너무 고달프다, 내가 죽어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히 남은 생을 마칠텐데···"(2005년 1월30일)
지난 16일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온 아버지(40)를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한(존속살인) 혐의로 구속된 여중생 이아무개(15·강원도 강릉)양의 일기장 내용 일부이다.
지난 20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이양의 일기장을 입수, 공개하자 이 여중생에 대한 구명운동이 전국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양이 구속되면서 강릉지역 4개 여성·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20일 성명을 내고 "사법처리 과정에 관련 전문가의 견해를 반영하고 이양이 겪는 심리적·정식적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전문치료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 강릉경찰서를 방문해 이양을 면회한 뒤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해 변호사를 선임키로 했다.
이양이 다니던 중학교 교사 50여명도 경찰과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강릉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선처 호소문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포털사이트인 다음(Daum)네티즌 청원난에는 20일과 21일 ‘아버지 살해 여중생 선처해주세요’란 제목으로 네티즌 서명 운동이 펼쳐져 이날 이틀 동안에만 3만여명의 네티즌이 동참했다.
온라인 상에는 “한 아이가 15년동안이나 폭행에 노출돼 있었는데도 우리는 방관했다”며 “이 아이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한계상황에서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글들이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이양의 가족들 역시 "아버지의 술 주정과 가정 폭력에도 용케 잘 자라줬다"며 "아이의 장래를 위해 그저 선처를 바랄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는 것이다.
■ 15년 가정폭력의 끝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비슷한 사건은 많다. 아니 이런 사건에 언론이 무뎌질 만큼 자주 발생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유난히 안타까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유난히 주목받고 주변의 선처호소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왜 일까.
이양이 살해한 아버지 15년동안 늘상 집안을 때려부수고 같이 사는 자기 부모(아이의 조부모)와 딸을 상시로 구타하고 4살 난 딸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딸을 살해하려했다. 이 때문에 딸은 자신이 늘 불쌍하다고 일기장에 적고 아빠가 어쩌다 배를 타고 일하러 나가는 날이면 `$$`아빠가 없으니까 너무 좋다. 너무 마음이 놓이고. 언제나 이랬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했다.
사건자체 정황부터 동정할 여지가 많은데다, 여중생이 평소 가족과 함께 겪은 고통과 고민을 적은 일기장이 유별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건자체 정황을 보면 누구나 ‘오죽했으면’이라는 안타까움을 표시했고 여중생이 평소 가족과 함께 겪은 고통과 고민을 적은 일기장이 유별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일기장이 아니다. 어떻게 살해했는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양이 15년간 피해자였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은 주변의 동정과 선처 호소를 전하는 것보다 이런 사건의 근본을 조명하고 사회적 대책을 논해야 한다.
이양에게는 위기의 상황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구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아빠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현재 이양이 갈 곳은 차가운 철장안이 아니다. 아이의 치료가 우선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격과 가족들과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 아버지 없는 세상에 대한 안도감 등으로 분열되어갈 아이의 심리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철장안에 가두는 것은 15년간 피해자로 살아왔던 한 인간을 또 한번 피해자로 종지부를 찍는 반 인간적 행위다. 법은 인간 아래에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