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향토문화지킴이 회장 이인영
필자는 지난 5월 17일 좌찬(좌전)고개 독립만세 유적지 조성사업 재검토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용인시 행정당국에 제기한바 있다.
이유는 용인사 연구 정립의 구심점을 먼저 확보할 수 있는 시립박물관을 우선 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였으나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관련단체와 시 당국에 번거로움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간과 되었다고 판단되어 청원을 철회했다.
그러나 내 소신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나는 용인지역의 독립 항쟁사를 연구하면서 명성왕후 시해 사건이후 단발령 강제시행, 을사늑약 체결, 대한제국 군대 해산 사건 등 역사의 고비마다 봉기했던 의병 항쟁사로부터 3.1 독립만세 항쟁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고장에서 배출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 하면서 선열들의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과 애국정신이 왜 선양되지 못하고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정확하게 1986년부터 이 의문에 접근하기 시작해 용인지역 독립 항쟁사 연구에 몰입한 끝에 졸저 ‘내 고장 용인 독립 항쟁사’를 엮어 내기에 이르렀고, 이 책의 판권을 독립항쟁 기념사업 기금을 마련하는데 쓰도록 위탁 한 바도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의 자료를 근거로 해 ‘용인군 독립항쟁 기념탑’이 세워 졌다.
그 후 향토문화 연구 풍토가 사분오열 되면서 정작 용인의 독립 항쟁사를 연구한 내가 배제된 채 무슨 기념사업단체가 파생되었고, 그런 이유로 불만이 누적되어 본 좌찬고개 성역화 사업의 재검토를 청원했던 것으로 지목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어찌 추호인들 사적인 불만에 기인된 것이었겠는가?
내 고장 독립항쟁사에 심취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외형의 포장보다는 내용의 축적이 더 시급한 사안이라는 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역사의 현장과 선열의 행적은 묘연해지고 세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사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예를 들어 3.1 만세 운동 당시 용인에서 35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속출 되었으나 확인된 인물은 안종각, 최우돌, 성락상 등 3~4명에 불과하다.
또한 139명이라는 실종자가 발생되었지만 이들의 신원조차 밝혀 내지 못하고 있다. 투옥되었던 65명의 지사가 있었지만 이들의 절반밖에 확인되지 못하고 있고, 포상된 분들 역시 그 절반도 안된다.
수지지역 독바위 대지리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했던 고주원, 이회신 선생의 신원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며 의병 봉기에 가담했던 항일 지사 40여명의 행적은 드러나고 있으나 그 후손들이 확인되지 못해 대부분 포상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몇 가지 사안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내가 조사 연구한 용인의 독립항쟁사는 작은 시작이며 풀어야할 과제에 겨우 단초하나를 제공한 것에 불과했다.
또 용인의 애국지사를 거론 할 때 순전한 용인 출신도 있으나 전월순, 김근수 같은 독립지사는 외지인으로서 용인에 와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고 수원태생의 독립지사가 용인에 묻혀 있는 경우, 나혜석과 같이 일시 머물렀던 인사 등이 있다면 이들의 기준점은 어디에 둘 것인가?
또 독립 항쟁에 실적과 근거는 있으나 포상 받지 못한 인사를 애국지사 명단비에 포함 시킬 것인가 아닌가. 이와 같은 논란의 여지도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이다. 이와 같은 기본 문제를 배제하고서 외부 전문가를 초치하여 돈 주고 지식을 빌려오는 학술대회가 실제에 있어서 얼마나 부합되었는가도 생각해 볼 문제였다.
또 하나 고증에 관한 문제이다. 백암면 최삼현 의병의 경우 의병장 허위의 휘하에 가담하여 ??활동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해방 후 항일의병이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그 후손들이 여러 가지 정황과 증언내용을 들고 독립 유공자 포상신청을 제기 했으나 보훈처에서는 단 성명 세글자를 고증할 수 있는 문헌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포상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한 개인의 사안도 이러하였거니와 하물며 몇 십억을 투자하는 성역화 사업 일진데 이에 상응하는 내용과 문헌의 근거와 명분이 선명하게 부각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특히 역사와 유서의 속지성과 현장의 분위기는 기념물을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물론 기존의 용인군 독립항쟁 기념탑은 현지성이 배제 되었다.
이것은 항일의병 독립 애국지사 3.1 만세 운동 세 줄기 흐름을 한데 묶어 용인의 독립 정신을 표방한 것에 불과하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당국에서는 용인지역 독립 항쟁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 수집? 연구? 전시 할 수 있는 박물관이거나 그도 아니면 한시적이나마 연구기관을 운영하던지 아니면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 하던지 간에 알맹이를 건지는 작업도 병행 돼야 진정한 독립 애국정신이 기려질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소신의 일단이다.
어쨌거나 관련단체에서 이와 같이 큰 사업을 이끌어 낸 것은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이런 일에 찬물을 끼얹을 배짱도 나에게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기념사업 실시와 병행하여 관련 사료의 수집, 문헌의 조사, 유족의 확인, 유공자의 포상 신청 등 찾고 보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용인의 과제요, 우리의 사명이며 애국선열에 대한 최소한의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거듭 밝히지만 이번 기회에 다른 가치의 역사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근본 대책이 강구 된다면 그것은 향토사를 연구해온 나로서의 여망은 끝이 될 것 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