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애우 단체에서 주최한 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장애우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것에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과 잠시나마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아주 흐뭇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우리시에는 곧 건립예정인 것을 포함해서 장애인 종합복지관이 두 개 있다고 말하자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순간 “행정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여기로구나!”하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쳤습니다.
행정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쓰라면 전문가나 시민이나 공무원이나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그만큼 행정의 최종 목적지는 지극히도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합니다. 더욱이 그 답은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기 껄끄러운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꽤 의미심장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우들과 만나면서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떤 활동이든 일정한 공간에서 그것을 업으로 여기고 하는 사람들은 종종 “내가 왜 이 짓을 하지?”하고 반문을 할겁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종종 “내가 왜 시장이 되었지?”하고 반문합니다. 시장이 된 것에 대해 후회해서가 아니라 맘먹은 대로 잘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위해 섭니다. 그것은 행정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우리시 행정이 더욱 올바르게 흘러가야 한다는 채찍입니다. 올바르게 흐른다면 우리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만 그 반대로 올바르게 흐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막힌다면 행정은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시 행정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요? 우리시가 처한 특수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런 곳에 가 닿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소수자에게 미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는 권력이나 부가 많은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이른바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특히 육체적인 힘의 한계로 인해 고통받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은 소수자 중 소수자일 겁니다.
누구나 늙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백지 한 장 차이도 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소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동정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시스템화해서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행정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은 껄끄러운 게 아니라 신선한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곧 행정의 흐름을 올바르게 하는 기초인식으로 자리할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