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1994년 한양대학교를 다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입단하는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LA 다저스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2001년 12월텍사스 레인저스에 5년간 총 7100만 달러(약 923억 원)에 입단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그의 소식이 스포츠 신문을 비롯한 뉴스의 1면 톱기사를 보면서,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커트 실링 이라는 인물에 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1966년에 태어난 그는 1986년 프로팀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후 별다른 활약을 못해 트레이드가 되었고 마이너 리그에서 활약하다 1990년에 비로서 메이저리거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게임의 중간에 가끔씩 등장하는 중간계투로 만족해야 했다. 그뒤 2년 동안 그는 무려 2번이나 팀을 더 옮겨 다닌뒤 1992년 무려 12승을 올려서 뛰어난 투수로 인정을 받게 된다. 93년엔 16승과 더불어 챔피언 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는 활약을 펼쳐다가 ?메어저리거가된 이후 최고의 해를 보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다.
94년 부터 시작된 어깨 부상으로 그는 95년 어깨 속의 뼈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결국 그는 시즌 중간에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96년 그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기에 성공했고,97년과 98년 최고의 탈삼진과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최고 투수로써의 명성을 떨쳤지만 99년 다시 어깨수술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2000년 그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팀에 스카웃 됐다.
그의 실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이지만 최고의 연봉을 받고 있진 못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많은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가 애리조나 팀을 택한 이유중 하나는 돔구장인 뱅크원 볼파크를 갖고 있어서 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돔구장은 야구장 지붕을 닫을 수 있으므로 햇빛을 차단할 수 있고 그래야만 피부암에 걸린 부인이 자신의 경기를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그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15년이 넘는 선수 생활 동안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던 월드시리즈 우승의 중요한 시점에서 자신의 승리를 날려버린 갓 스무살의 동양인 투수(김병현)에게 그가 보여준 것 은 꾸중이나 화풀이가 아닌 용기와 격려를 담은 한마디였다고 한다. 이 투수처럼 이번 박 찬호도 어려운 시기를 보낸 후 이룩한 100승이 단지 운동 경기에서의 승리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한국인의 투혼을 보여주는 멋진 퓰응?시작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