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와주었던 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것을 보게 되다니…. 이렇게 한국을 일궈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소원 풀었습니다.”
지난 20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 용사 14명이 용인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20대 전후에 한국 땅을 밟았던 이들이 백발의 노인이 되어 다시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한국에 온 소감을 물어보자 이브자닌 카라자니기안 (73)씨는 눈가가 붉어지더니 결국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이렇게 발전시켜 감사하다”고 말하는 터키 노인의 눈물은 50여 년간 우리나라에 대해 가져온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15명이 아니고 왜 14명일까?
5박 7일 일정의 한국 방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15명이 초청됐는데 한 명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사정은 이러했다. 용인시는 자매결연을 맺은 카이세리시의 한국전 참전 용사를 초청해, 건강 검진에서 합격(?)한 15명이 선발됐는데 이 합격자 가운데 너무 들뜨고 흥분한 나머지 한 할아버지가 출발일 아침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고. 짐도 다 싸놓았던 이 할아버지는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병원 신세를 지느라 꿈에 그리던 한국행에는 동참할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14명의 터키 용사들은 시장이 주최하는 환영 만찬에 참가하고 숙소인 양지 파인리조트에 짐을 푸는 것으로 첫날을 보냈다.
이튿날. 터키군 참전기념비 헌화로 일정은 시작됐다. 정장 재킷에 훈장을 가지런히 단 이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전투에서 숨진 동료들을 추모했다. 55사단에서는 사열을 받고 우리나라 장병들과 점심 식사도 함께 하고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50년 만에 한국군을 본 터키 용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놀라워했다.
“50년 전 한국 군인들은 우리 터키군에 비하면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키가 작았었는데 지금은 우리들보다 큰 것 같다”며 “어떻게 50년 만에 이렇게 커질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 한국이 많이 발전해 50년 전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며 그 차이는 설명할 수도 없다고 했다.
■ 우리 부대 마스코트 ‘아이체’를 찾습니다
하사관이었다는 메흐멧 무스타파오그푸 씨는 자신의 부대에서 키웠던 한국 여자아이와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천에 상륙해 한강을 따라 서울로 올라오던 중 5살쯤 된 아이를 발견해 몇 달간 군대에서 보살피며 키웠다는 것이다.
한국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이체’라는 터키 이름을 붙여주고 아이도 금새 터키어를 익혀 한국 사람들과 터키군의 통역 노릇도 하고 부대의 마스코트로 군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러다 부대가 계속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헤어지게 됐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아이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사흘 째 방문한 민속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초가집을 보며 “당시에도 짚을 올려 초가지붕을 얹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또 “벽이 허물어진 초가집의 작은 방에 열 댓 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모여 베개, 요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부둥켜안고 잤다”며 피난민들의 삶을 기억하기도 했다.
일행 중 몇몇은 “그렇게 힘든 중에도 감자나 옥수수, 밤 같은 것을 군인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기억하는 한국에는 허허 벌판의 산과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고아 이외에도 “아줌마 물주세요” “일루와 빨리빨리” 같은 한국말도 있었다.
■ 용인 시민들과 나눈 형제애
나흘째를 맞은 23일. 주최 측인 용인시는 무더운 날씨로 참전용사들의 건강을 염려해 일정을 변경했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로 장거리 여행은 건강에 무리가 아닐까 걱정한 용인시 측이 간호사 2명을 수행시켜 수시로 혈압을 체크하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물어보도록 했지만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 때문에 결국 일정 변경을 택했다.
에버랜드에서 사파리를 구경하고 수원 영통의 한 대형할인매장에 들러 가족, 친지에게 줄 선물을 사는 시간. 이곳에서 터키 참전용사를 알아본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통역에게 조용히 돈을 쥐어주었다.
참전용사들이 선물 사는데 보태달라는 것이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참전 군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을 그대로 전해졌다. 통역은 터키 용사들을 위해 양말세트를 나눠주며 이런 내용을 설명하자 터키 용사들은 매우 뿌듯해하며 감격했다.
그리고 오후. 수지 여성회관으로 용인시국악단 공연을 보러 가는 길, 버스에서 한국의 교통체증을 경험하던 그 순간에도 터키 용사들은 한국인들의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외벽에 터키 참전용사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어서인지 금새 터키용사들을 알아본 시민들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겼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반가운 인사에 참전용사들은 매우 고무된 듯했다. 공연장에서 6·25관련 영상을 상영하자 감정이 복받친 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용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환송회에서 용인시장이 한국에서의 일정을 담은 방문 기념앨범을 선물하자 “가보로 남겨 대대로 한국을 잊지 않도록 하겠다”며 기뻐했다.
“이렇게 잊지 않고 불러준 한국과 용인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전쟁에 참여한 뒤에 저는 한국을 잊은 적이 없지만 여러분도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터키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한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겠습니다.”
터키 참전 용사들은 판문점과 도라 전망대, 서울 시내를 돌아본 후 25일 터키로 떠났다. 한국인의 마음을 듬뿍 느낀 이들이 올 때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을 더 키워서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자료제공 : 용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