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에 반찬봉사 … 소외된 이웃의 친구
수지의 중심지 풍덕천동. 정몽주의 시신을 경상도 영천으로 운구하는 도중 바람에 영정이 날아올라 풍덕래라고 하다 1914년 일제의 ‘지명학살’때 래가 하천을 이르는 (川)과 같이 발음된다고 풍덕천으로 바뀌었다는 곳. 또 물이 깊어 임진왜란 때 왜적이 풍덩풍덩 빠져죽어 풍덩내(川)라고 하던 것이 풍덕이 되었다는 일설이 있기도 한 곳.
달이 뜨는 곳을 제일 먼저 보는 토월, 들가운데 정자가 있어 정평, 토월마을옆에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고 새말, 해방후에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해방촌…등등. 하지만 지금 이런 동네이름을 유추할 만한 분위기는 어느곳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 됐다. 지금 이곳은 아파트 단지들로 동네가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아파트만 있을 것 같은 풍덕천동에도 곳곳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이 사는 주택들도 빼꼼히 삶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덕이 많은 분이 오셨다(豊德來)”라고 정몽주선생을 기리는 동네답게 이곳엔 지명처럼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먹거리를 직접 챙겨 주는 ‘반찬봉사’를 한다는 곳이 기자의 발길을 잡아 끌었다. 풍덕천1동 주민자치센터(위원장 장석영)의 복지분과엔 반찬봉사 4인방이 있다. 심영숙(60) 분과장, 우성숙(47), 최경해(44) 그리고 서정화(38)씨가 그들. 아쉽게도 서정화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마음만은 안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 4인방은 지난 5월부터 한달에 두번씩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에 ‘사랑의 쌀‘과 ‘반찬’을 직접 가져다 주고 있다.
벌써 수지로 이사온지 11년이 되어간다는 심 위원장은 “반찬을 가져다 드릴려면 제일 미안한 것이 골목에 차대기가 불편해 가지러 나오라는 전화를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께 정말 죄송스런 일이 아닐 수 없어요”라며, “작은 봉사지만 받는 사람이 기뻐할때 오히려 주는 우리가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은 봉사의 새내기라 배운다는 마음으로 한다”는 우성숙씨는 “작은 봉사가 뜻밖에 감사의 말을 받았을땐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고 수줍어 한다.
최경해씨는 반찬을 가져다 드렸을 때 한 할머니가 “이 마음 하나님이 아실 것…축복 받을 것”이라고 말해 가슴 찡해졌다며, “그들이 해주는 축복은 커다란 감동 그 자체”라며 벅차한다.
이들 4인방은 한 집씩 돌아가며 집에서 직접 반찬을 만든다. 또 각자 한가지씩 반찬을 만들어 오기도 한다. 물론 정성이 가득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심 분과장은 “한 할머니가 일하러 가시면서 집앞에 반찬을 받을 통을 놔둔 것을 보며,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찬봉사를 확대해 나가 소외된 사람들의 소중한 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성가득한 반찬을 들고 행복한 배달을 하는 복지분과 4인방의 힘으로 풍덕천1동이 아름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