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날, 음악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는데
식탁 위 모과가 눈에 띈다
이 녀석이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와 공기를 바꿔 먹더니
도도하게 몸을 구부리고 있더니
한 달을 야윈 등 드러내고 웅크리고 있다
오늘에야 모과청 만들려고
바람이 풀을 날카롭게 베듯
풀이 바람을 베듯 모과를 힘껏 자른다
풀이 바람에 뽑히지 않듯
바람이 풀에 걸리지 않듯 모과는 이름을 잃지 않는다
지리산 돌아다니던 바람 한 줌
가벼운 햇빛 알맹이들이 잘리는데
무거운 내 팔이 쉬울 리가 없다
모과에는 지리산이 가득하고 집안엔 모과로 가득하다
겨우 다듬어 유리병에 넣고 아카시아꿀에 재웠다
녀석은 병 안에
제 살던 기억 풀어내어 향기를 풀어내어
그 이름 풀풀 쏟아놓는다
바람과 햇빛을 꼭 잡아 매 병 입구를 동이고
선반 위에 얹고 남은 부분들을 만지작거린다
껍질, 속씨, 작은새 울음, 나뭇잎 소리
향기롭게 들리는 지리산 소리들이 손바닥 위에서 구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