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하이브리드 사회다.
하이브리드사회(hybrid society)는 잡종, 잡종 의식, 잡종 문화가 살아 숨쉬는 사회다.
잡종은 원래 생물학적 개념이다. 생물학적 의미의 잡종은 종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존 경쟁을 통해서 진화한다는 인류 과학사상 가장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 존재다.
진화론은 신이 창조한 고정된 종의 분류체계를 무너뜨리며, 잡종은 진화를 매개하는 전이적 존재로, 동시에 순종은 진화의 법칙에 따라 언제든지 잡종으로 변할 수 있는 순간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 개념이 사회문화 분야에 적용된 것은 탈 중심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이다.
잡종 의식은 배타적인 편 가르기를 거부하고 공생을 도모한다. 20세기말에 거론된 탈장르, 퓨전, 크로스오버 등이 모두 하이브리드 문화다.
21세기에 왜 하이브리드가 중요한가?
그것은 하이브리드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이론적 합의 때문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여성과 남성, 중심부와 주변부 등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것을 서로 다른 집단들의 경계를 허물고, 둘 사이의 공생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하이브리드는 인식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계속 양산되고 있다.
우선 20세기 후반부에 많은 분야에서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 이론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었고, 이에 따라 환경문제처럼 예전에는 무시되었거나 하나의 범주에 귀속되었을 것들을 잡종 범주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잡종은 저급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있어 하이브리드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상품에서 하이브리드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생을 영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의식주에서 살펴보자.
우선 음식문화를 살펴보면, 5년 전부터 청담동을 시작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퓨전 푸드’가 있다. 두 나라 이상의 음식 특징을 조합해 만든 퓨전 푸드는 새로운 맛을 찾던 트렌드 셋터들의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가장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떡볶이마저 중국식 자장으로 비빈다든지 이태리식 피자 치즈와 소스에 버무린 것들까지 등장했다.
요리과정 중에 퓨전화한 이런 음식 외에 아예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가운데를 반으로 나눈 그릇에 자장면과 짬뽕이나 비빔냉면과 물냉育?담아서 어느 쪽을 고를까 하는 소비자의 갈등을 해소시키고 있다.
주생활에 있어서는 한옥과 서양 건축의 장점을 취한 리모델링과 젠 스타일, 서양건축에 있어 가장 기능적인 면을 부각시킨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전통적인 고가구를 디스플레이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를 고려하여 실내 정원을 비치하고 입구에 전실을 만들어 장독이나 화분으로 장식하는 것 등도 넓은 의미로서의 하이브리드로 볼 수 있다.
패션은 1980년대에 다원적인 경향이 강해져 개인의 자유가 제한적이었던 과거의 복식에서 벗어나 자기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다양한 문화의 복식 스타일 간의 경계와 구분이 흐려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각 스타일들의 재치 있는 혼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복식에 다양한 시대의 스타일을 섞으며,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내릴 수 없는 하이브리드 패션을 발표하고 있다.
극명한 예로는 스트리트 패션을 참고할 수 있는데, 몸에 착용한 온갖 아이템들은 마치 ‘The Supermarket of Style’이라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잡동사니 스타일이다. 그것은 착용자 자신의 상상력과 지식, 감성에서 나온 산물이다.
21세기는 다양한 개념의 하이브리드 세기이다. 이미 새로운 잡종 만들기가 성행하고 있다. ON/OFF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연료가 필요 없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고, 동·서양 스타일이 혼재된 주택에서 새로운 퓨전 요리를 먹으며, ‘The Supermarket of Style’ 패션을 즐기는 모습, 이것이 21세기 우리의 생활일 것이다.
①자장과 짬뽕 :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항상 갈등이 생기는 사람들을 위해 그릇을 반으로 나누어 놓은 하이브리드 메뉴 짬짜면. ② 하이브리드 카 : 고유가 시대의 경제성과 자연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카. 기름과 전기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③ 패션은 20세기 후반부터 하이브리드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민속풍에 사이버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다. ④슈퍼마켓 스타일 :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해 있어 스타일의 슈퍼마켓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슈퍼마켓 스타일은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에서 많이 나타난다. ⑤ 아이를 돌보는 모성과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유아적인 이미지가 섞여 있는 크리스찬 디올의 컬렉션. ⑥하비니콜스 백화점 : 영국의 하비니콜스 백화점의 뷰티관을 알리는 광고다. 트렌드를 리드하는 백화점 이미지를 자극적인 명화풍으로 꼴라쥬했다. ⑦ 그림의 한 가운데에 있는 종이배가 빛의 속도에 의해 빙글빙글 돌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컨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