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행가 가사 중에 “나는 나는 꽃을 든 남자”라는 노랫말이 있다.
이 남자가 무슨 꽃을 들고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만약 장미를 들었다면 사랑을 고백하려 하였을 것이고, 백합을 들었다면 순결을 물으려 했을 것이다.
또 기혼 남성임을 전제하고 그가 원추리를 들었다면 아들 낳기를 바랐을 것이며, 달리 물망초를 들었다면 짝사랑 하는 여인에게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하소연을 하려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꽃에 은유된 의미는 어제 오늘 이야기되어 온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매. 란. 국. 죽은 사군자라 하여 선비의 지조를 뜻하였고 송. 죽. 매를 합치면 세한삼우가 된다.
또 바위와 매화가 그려져 있다면 익수(益壽)를 뜻하였으며, 모란은 부귀를, 석류는 다산을 의미 하였다.
대 자연에 핀 꽃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신의 예술은 될망정 사람의 예술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이 만든 한포기의 꽃이나 여러 종류의 꽃을 한데모아 꽃꽂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꽃을 꽂는 이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되었다면 곧 사람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꽃꽂이란 꽃의 소재를 꽃 그릇 (화기)에 꽂음으로서 꽂는 이의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는 조형 예술이다.
우리 생활 속에 꽂아지는 꽃은 그 꽃의 색채, 꽃의 선택, 꽂는 이의 마음가짐, 또 그 분위기에 조화된 꽃 그릇, 이러한 것이 일체가 되어 그 배합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을 때 신의 예술인 꽃을, 사람이 꽃꽂이라는 디자인 행위를 통해서 신의 예술을 재창조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이라도 일단 디자인 또는 얼리지멘트의 소재가 된다면 작품이 의도하는 철학의 요소로 바뀐다.
이와 같은 꽃꽂이의 생활은 현대문명사회 에서만 행하여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신라, 가야, 고려시대에 꽃을 꽂는 화기가 발달하여 왔다는 것은 그 시대에도 이미 꽃꽂이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꽃꽂이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꽃꽂이의 원류는 우리나라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병풍에 그려진 “기명절지화” 라는 것도 당 시대 꽃꽂이 예술을 보여주고 있는 단편적인 예이다.
또, 서양의 비쟌티움이나 바로크시대 예술에서도 꽃꽂이는 예외 없이 고 품격 예술의 장르가 되었다.
꽃꽂이는 사치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디서나 가능한 생활예술인데 현대 생활에 쫓기다 보니 꽃을 꽂을 여유가 없을 뿐이?
정서가 메마른 가정과 거실 공간 침실 등에 주부가 연출한 꽃 한송이 꽂을 만한 여유는 있어야한다.
가정의 건강, 부부의 애정, 자식 사랑, 부귀다복을 꽃의 소재를 찾아 연출하는 주부의 슬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꽃꽂이는 심상의 언어요, 사각의 언어이며, 향기의 언어이자, 내면 세계 표현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