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깨져 버린 언어들 그 생각을 그리며…”

용인신문 기자  2006.02.13 09:49:00

기사프린트

   
 
“나는 언어의 생각을 그린다”
‘뺏벌’, ‘과천미인’ 등의 소설과 ‘언화도’라 명명한 미술작품 등으로 이름난 여류작가 안일순(52세)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처인구 원삼면 학일마을을 찾았다.

안일순 씨는 지난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발생한 ‘윤금이 사건’을 계기로 1년동안 동두천, 송탄, 아메리칸 타운 등을 취재하며 직접 보고 들은 현실들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뺏벌’을 탄생시켰다.

이후 그녀는 지난 1999년 기지촌 여성을 위한 기금마련전을 펼치는 등 여성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밖에도 가족사의 아픔에서 현대사의 질곡까지 뻗어 있는 억압된 현실을 드러낸 단편소설집 ‘과천미인’ 등을 펴내며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오던 중 소설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언화도’를 찾게 됐다.

그녀는 “언어를 쓰되 언어의 표현방식에 따르지 않는다”며 “언화도는 언어의 생각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필리핀 안에 있는 전 미군기지 마을들을 다녀온 그녀는 ‘Military Madness’라는 주제로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과 아이들을 형상화 한 언화도의 첫 작품들인 ‘사이라’, ‘캡콤’, ‘히뻗??등을 만들었다.

‘캡콤(Cabcom)’은 미군이 버리고 간 마을 이름에서 딴 제목이다. 군대가 떠나고 난 후 독극물과 중금속 등으로 오염된 마을에서 살던 주민들은 암 등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임신한 여자들이 사산하거나 기형아를 낳는 등의 피해를 입게 됐다.

그녀는 “이곳에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키가 자라지 않는 9살짜리 아이를 비롯해 200여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며 “사진을 찍을 때 차마 쳐다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히빠리(Hippari)’는 포주에 얽매이지 않고 길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빨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68세까지 기지촌에서 히빠리 생활을 하다 2년 전에 살해당한 한 여성을 주제로 만든 작품”이라며 “작품들은 미군의 억압된 군사주의를 표현하는 나만의 표현방식”이라고 밝혔다.

여성과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들을 필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안일순씨. ‘언화도’라 불리는 작품속에는 이들의 모습과 깨져버린 문자, 물에 번진 듯이 지워져 가고 있는 글이 함께 숨쉬고 있어 작품을 보는 이들의 뇌리에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던져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작업의 순차성이 없고 시작과 끝이 모호한 부서진 이미지들의 조합들로, 시인지 그림인지 낙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깨져버린 문자들을 PVC필름과 OHP필름으로 결합해 그들의 생각을 담고있다.
소설가이자 화가, 여성운동가로서 활동하던 그녀는 지금 대학생 아들 둘을 둔 주부로써 원삼면 학일마을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언화도를 바탕으로 올해 말경에 자신의 작품집을 펴낼 계획인 그녀는 “모든 말들과 표현이 섞인 가운데 나의 길을 찾은 듯”하다며 “앞으로 더욱 탄탄하게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