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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소사

용인신문 기자  2000.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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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일 만우절
구미 지역에 펴진 하나의 풍속으로, 누가 왜 일으켰는지는 모른다. 악의 없는 거짓말로 남을 곯려 주려는 하나의 풍습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 4월 2일 어머니 교실 처음 개강 (1968년)
서울 금화 국민 학교에서 어머니 교실이 처음 출발하였다. 어머니 교실은 어머니들도 듣고 배우면서 자녀 교육을 돕고 올바른 학교 생활을 펴도록 하는 소양을 기르고자 시작한 것이다.
※ 4월 3일 규장 전운 간행 (1796년)
규장 전운은 조선 정조 때 규장각 학자들이 만든 책이다. 평(平), 상(上), 거(去), 입(入)의 사성을 종류에 따라 나누고 소리에 따라 골랐으며, 음의 다름을 구별하여 알기 쉽게 엮었다.
※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1968년)
마틴 루터 킹(1929~1968)미국의 흑인 침례교 목사이며 흑인 해방 운동의 지도자. 1950대 중반부터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백인에 의해 암살당할 때 까지 미국의 민권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급료가 낮은 청소부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서 맨피스에 있었다.
※ 4월 5일 식목일 (1946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 민족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되면서 헐벗은 우리 강토에 나무를 심어야 하겠다는 절실한 요망이 국민들의 의사로 집약되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농림부가 주관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어 조국 근대화와 산업 발전 등 민족사적인 의의와 농정사적 의미를 따져 식목일로 정하였다. (당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치고 통일을 완성한 날도 4월 5일이고, 성종이 신경(춘경-봄밭기리) 을 하신 날도 4월 5일이었으므로 민족사적 의의와 농경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 4월 6일 맥아더 원수 사망 (1964년)
미국의 군인. 미국-스페인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군인 A. 맥아더의 아들로서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육군에 근무하여 1930년 대장으로 승진하였다. 군에서는 극동통(極東通)으로 알려졌고, 1936년 필리핀군(軍)의 고문으로 근무하다가 1937년 퇴역하였다. 그 후 대일관계(對日關係)가 긴박하였던 1941년 7월 현역에 복귀하여 미국 극동군사령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1942년 초 일본군의 공격으로 마닐라를 빼앗기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 연합군 남서태평양 방면 연합군사령관으로서 대일작전을 지휘하였다. 그 해 가을부터 뉴기니작전을 비롯하여 반격작전을 전개, 1945년 7월에는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奪還)하고, 이어 8월에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 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한만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그는 만주폭격과 중국연안봉쇄, 대만의 국부군(國府軍)의 사용 등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4월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귀국 후에는 레밍턴 랜드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보수파(保守派)에 속하여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적도 있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이 유명한 연설은 장군으로서의 굳은 의지를 밝혔을 뿐 아니라, 그 연설을 들은 수천만의 미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일화를 남긴 맥아더 장군은 1964년 4월 5일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명예로운 일생을 마쳤다.
미국의 장군으로 육군 참모 총장을 지낸 맥아더 원수가 1964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극동 지구 사령관으로 일본군과 싸워 이겼으며, 6, 25 전쟁 때에는 유엔군을 이끌고 북한 공산군을 무찔렀다.
※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 (1896년)
우리 나라 최초의 민간인 발행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민권 신장, 자주 독립, 공정한 보도를 사시로 창간되었던 이 신문은, 처음에는 주3회 발행되다가 후에는 일간지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