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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칼럼/책 읽는 봄

용인신문 기자  2006.04.14 2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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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역광 속에서 책을 읽고 있다. 풍만한 몸매에는 여유가 담기고, 그녀가 쥔 책이 그 여유에 사색의 분위기를 물들인다.

인상파의 한 산맥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독서’(讀書)는 책 읽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눈부신 색조로 그려냈다. 수 년 전 프랑스 동포들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파리를 찾은 필자는 인상파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을 통해 독서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해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색의 혁명가로 불리는 르누아르의 역량 탓에 여인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받은 느낌의 대부분은 ‘책 읽는 행위’ 자체가 가져다주는 독특한 분위기에 있다.

서점의 한 귀퉁에서 동냥독서를 하는 어린 학생, 버스나 지하철에서 졸 듯 말 듯 책에 시선을 두고 있는 남자,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생각난 듯 책을 쳐다보는 젊은 아가씨.

나는 언제부터인가 책 읽는 이들을 훔쳐보는 일종의 관음증(?)을 즐기게 되었다.

그 모습들은 단순한 표정으로 서로 부대끼는 인파들 속에서 또렷이 구분된다. 육체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책과 하나 된 그들의 모습은 삭막한 도시생활에 단연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아름다움인 育甄?

근년 들어 독서에 대한 관심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줄을 잇더니 급기야 지난해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일년에 읽는 책이 단 1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긴 밤을 밝히며 독서삼매경에 빠지던 선비들의 후예들로 자처하기에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하지만 이 행위를 통해 고차원의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금의 진리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한 장, 한 장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와 만나며 이는 동시에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얼마 전 브라질 한인학교의 여교사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우리 협의회가 보낸 모국어 책으로 동포 2~3세를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책을 통한 독서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했다.

인터넷이나 TV보다는 느리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사람의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책의 정서적 친밀감이 지구반대편의 동포아이들에게 고국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의 위력을 먼 곳의 동포에게서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다.

과거에 우리 일상에서 쉽?들을 수 있던 ‘너 뭐 읽어보았니?’라는 질문이 지식독점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집단만의 동류의식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 책 안 읽어’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시류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르누아르의 ‘독서’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란 진정 어려운 일이 되었는가.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책이 가장 값진 장식품이란 것, 그것은 몸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치장하는 진정한 성찰의 꾸밈일 것이다. 이 봄 한 권의 책을 들고 독서의 참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