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용인의 N초등학교에서 체벌문제로 교사와 학부모간 갈등 끝에 당해교사가 대기발령이 검토되고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이밖에도 교사의 체벌논란은 어제와 오늘일이 아닐 만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교육계에선 ‘체벌은 폭력이므로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과 ‘교육적 수단으로서 비중을 고려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전자는 체벌의 물리적 측면에 후자는 체벌의 의미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체벌과 폭력에 대한 논란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폭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해결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교사의 체벌행위가 폭력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체벌은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회초리가 되고 사실적 차원에서는 몽둥이가 된다. 문제는 회초리와 몽둥이 사이에 놓인 체벌의 의미론적 기준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선 교사와 학생 사이에 `물리적으로는 때리는 것이 의미론적으로는 때리는 것이 아니다’는 교감이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 조상들도 회초리의 규격화로 그 의미 확립을 분명히 해왔다. 가르쳐 이끌어주는 것을 매 편자를 써서 편달이라 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교편을 잡는다고 했음은 매가 교육적 수단으로서 차지했던 비중을 암시해 준다. 서당이나 가정에서는 대.중.소의 회초리를 걸어놓고 제자나 아이가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키면 맞을 아이가 자기 잘못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그중 하나를 가져오도록 했다.
기자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본다.
수학시간에 쪽지시험을 본 적이 있다.
문제가 어려워 반 학우들 중 반 이상이 풀지 못해 담당선생님께 회초리를 맞은 적이 있다.
맞은 강도를 따지자면 허벅지 양쪽이 퉁퉁 부어올라 아마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으면 전치 3주 정도는 나왔을 법하다.
그러나 학생 누구도 부당성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체벌을 받은 기자와 학생들 모두 체벌에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