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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정치의 대가 조광조

용인신문 기자  2000.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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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는 조선 중종때의 학자. 문신으로 자는 효직, 호는 정암, 본관은 한양이다. 김굉필에게 수학했다. 중종 5년(1510) 진자, 중종 10년(1515) 알성문과에 급제한 뒤 전적, 감찰을 역임했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로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케 했고 소격서의 폐지를 단행케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케하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감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해 훈구파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의 남곤 심정 등이 무고해 능주에 유배됐다가 뒤에 사사됐다. 선조초에 신원돼 영의정에 추증됐으며 시호는 문정. 문집으로 정암집이 있다.
심곡서원은 묘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조선 선조 38년(1605) 설립됐으며 설립과 동시에 심곡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에도 존속한 47개 서원가운데 하나. 심곡서원에는 재실이 없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교육공간으로서 보다는 제향위주의 서원으로 주목되면서 재실의 의미가 적어진 때문이다. 따라서 사당 중심으로 서원이 배치됐고 주변에 장서각 교직사 등이 필요에 따라 마련됐다. 현재 사당, 강당, 장서각이 남아있는 목조 와즙의 건물이다.
묘는 부인과 합장됐으며 도비는 선조 18년(1585)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 높이 244cm, 폭 93cm, 두께 34cm의 규모며 장방형 비좌에는 국화문이 조각돼 아무런 치장이 없는 품격 높은 비신과 조화를 이룬다. 비문은 노수신이 짓고 이산해가 썼으며 김응남이 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