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나 산문은 항상 순수문학적 테두리안에서 존재해야 할까? 항상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으로 문학인들과 호흡하고 있는 한호 전 관동대 교수가 국내에서는 생소하기만한 시사패러디 ‘글쟁이의 세상나들이’를 이번주부터 연재한다. 시사적인 내용을 문학적 풍자를 통해 새롭게 보여주는 이번 연재 코너에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주>
영화 ‘지방선거 5·31’이 화려한 꽃마차 타고 전국에 곧 상영된다. 플래쉬, 확성기, 레드카펫, 기자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유와 정의, 진보와 분배를 믿는 별난 연사들이 더욱 돋보인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조용히 서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공정한 글쟁이로 누가 볼세라 눈만 빠끔 뚤린 누런 종이봉투를 쓰고 있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하얀 수건 하나 주던 시골 향우회 가듯이 편안하게 앉아있다. 연사들이 단상으로 오르고, 카메라가 몰아친다.
어느 전직 장관이 올라선다. 청중의 환호가 퍼진다. 그는 시장이 장관보다 더 높은 양 찬양한다. 아무도 천국의 정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존다. 그는 한바탕 목소릴 세우고, 불이 나가듯 연단을 내려간다.
누군가 내 옆에서 “저 연설 어떻게 생각하세요” 묻는다. 나는 어깨를 으슥하며, “저 용인 시청 높이가 중앙청보다 높잖아요” 대답한다. 나는 주변에 바바리코트 입은 젊은이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저런 연설이 얼마나 사람들 마음에 와 닿을까?“ 물론 아니지. 저들도 알텐데. 이게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우리당과 나라당의 관계가 저들의 주된 이야기가 되는가? 그렇진 않겠지. 저건 모두 영화일 뿐이야. 지난 번 영화 ‘大善“‘처럼 진실이 아닐 거야. 이런 영화 축제 때마다 단골 메뉴가 바로 교통문제로군. 다음 연사가 오른다. 그는 붉은 머리띠 두르고 팔을 휘두른다. 용(龍)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에서 머리 띠 두르고, 교통문제나 해결하겠다니. .관심 있는 사람은 시시한 C.C. 골프클럽에 가는 사람들뿐인데. 이런 영화에서는 제작자 의도만 열심히 따르면 돼지. 그 스토리와 플롯의 균형 문제는 관심도 없을 거야.
이 영화에서 웃기는 건 관객이 없다는 점이야. 검은 옷 입고 장갑 낀 로봇만 있지,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이 없군. 저 높은 분들이 이렇게 기분 나쁘게 목소리 높이면서도 환대받지 못하다가, 막상 저 높은 데로 올라가면 이런 수모를 잊으려고만 할텐데.
그렇지 않아도 뻣뻣한 저 피노키오 목을 더욱 끄덕이면서, 단 아래 모인 목각인형들에게 더 큰소리만 칠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이 영화가 희극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이 영화 등급이 뭐죠?” 선거 지배인이 대답한다, “19세 이하 불가”랍니다. 아이들이 배울 게 없으니 몰래 상연 해야죠. 감독이 넉살스레 설명한다. “이게 정친가요 아니면 오락인가요?” 선거단장이 대답한다, “둘 다 하는 거 아닙니까?” 시장에 입후보하는 장관과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
이렇게 썰렁해서야 어디 영화 수입이나 올리겠나. 그야말로 매표구 영수증이 무지개 위로 휘날리며 태극기 날리는 선거에 영향을 주겠네. 나는 좀 더 정직해져야겠어. 이런 영화는 본 적이 없어. 난 우리나라 영화 팬인데. 누가 이 영화를 만들었지? 그 감독은 우리나라가 자유국가라고 증명하고 싶은가보군.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 할 때, 나는 일어나지도 않고 하늘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