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나 산문은 항상 순수문학적 테두리안에서 존재해야 할까? 항상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으로 문학인들과 호흡하고 있는 한호 전 관동대 교수가 국내에서는 생소하기만한 시사패러디 ‘글쟁이의 세상나들이’를 연재한다. 시사적인 내용을 문학적 풍자를 통해 새롭게 보여주는 이번 연재 코너에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주>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선거 유세를 듣던 두 사람이 말한다.
“눈을 반쯤 감고 저 사람들 바라봐. 가는 눈 틈으로 생생하게 보이는 게 있지?”
“그래, 덫에 걸린 듯 저들의 제스처가 똑똑히 사로잡히는군.”
“난 가끔 소리나 향기도 이렇게 눈으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자넨 향기 나는 사진기구만!”
“우리 지금 놀이 하고 있는 거 맞나?”
“그럼, 우린 불확실한 자의성하고 계약해 여기 나와서, 우연에 의존하면서 놀고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가변적인 대상을 지각하는 일이 얼마나 상대적인가하고 근본적인 질문하는 거네.”
“그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저 소리 전에 들어 본적 없는가? 전에도 똑같이 들어본 것 같은데, 왠지 낯설군.”
“자네도 피크노렙시(picnolepsy) 증세가 있는은릴?”
“그게 뭔데?”
“작은 간질 증세처럼, 순간적으로 지난 일을 기억 못하는 거야.”
“그래, 재작년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똑같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도통 기억할 수 없구만.”
“우린 모두 기억의 부재를 체험하고 있는 거야. 오히려 이런 모순에서 깨어있는 상태가 더 즐겁지 않은가?”
“하긴 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건 생각의 속도지!”
“망각의 속도를 말하는 건가?”
“저들 말의 속임수를 삶의 특수효과라고 생각하고 선거 영화나 즐기게.”
“우리의 기억 부재증 발작이 연속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효과가 더 커진다지?”
“그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구경거리에 관심 두는 게 마치 어린애 놀이 같아.”
“선거라는 연속사진의 진실을 누가 믿겠어? 선거는 결코 본 적이 없는, 기억할 수 없는 불안정한 것들을 눈에 보이게 하는 특수효과라지.”
“거 참, 저 속마음을 명확히 보긴 어려워도, 저들 투표 대상을 관찰해야 하잖아?”
“자넨 모르나, 감각은 우리를 속인다고, 데카르트가 말했던가?”
“대가리 터지도록 봐도, 저 환영(幻影)들은 맨날 거짓말이나 하니 알 수 있겠나.”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잃어버린 순간뻗?잘 인식하면 돼.”
“어떻게 하면 잘 알 수 있겠나? 이미 순간순간 지나간, 아니 잃어버린 현실을 계속 지켜보면 되겠어?”
“저들이 말하는 사이의 시간성을 잘 판단해야지.”
“사이의 숨은 의미를 보란 말이지.”
“자네 저 말 언젠가 또 들어본 것 같지 않나?”
“글쎄, 우린 모두 기억부재증 환자인가봐!”
얼굴에 땀 닦으며 수화하던 두 청각 장애인은 손을 멈추며 한숨짓는다. 그들은 연단 위의 몸짓이 이미 그림이라고 눈치 채고 먼저 마임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