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에세이 나들이/하늘 구만리

용인신문 기자  2006.05.29 10:05:00

기사프린트

   
 
일년지계[一年之計]는 막여수곡[莫如樹穀] 이라고 했다.
즉 일년[一年]에 계획은 곡식[穀食]을 심는 것이라는 뜻인데, 어느새 새해 들어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하는 우수[雨水]가 지났기에 실내에 있던 화분을 베란다유리창 밖으로 내놓았다.

오늘은 마음다짐을 크게 하고 음력 정월달이 다 가기 전에 강원도 횡성에 막내아들 친구 어머니에게 부탁한 우리 콩으로 쑤어 만든 무공해 메주로 장을 담았다. 마침 길일[吉日] 이라고 하는 말[午]날이다.
일년 내 먹을 반양식이라는 메주로 만든 된장 간장!

맛이 있게 익으면 복지시설과 친구 집에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믓 했다.
겸하여 셋째 형님이 보내주신 텃밭에서 가꾼 좋은 고춧가루와 보리쌀 띄운 것으로 고추장을 곱게 담아 놓고, 친구를 불러 간을 좀 보아달라고 했더니 고추장색갈이 아주 예쁘다고 칭찬이다.

“소금 풀어 담은 간장항아리에 메주와 숯과 빨간 고추가 어우러져 예쁘다” 하면서 “옛날 어른들처럼 새끼도 꼬아 붙들어 매지 그랬어?” 하기에 짚이 없다고 하면서 웃었다. 일을 끝내고 친구와 같이 차 한 잔을 들면서 밭에서 나는 담백질 이라면서 콩을 예찬하는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침 토요일 오후 영통에 사는 둘째네 손주 아이들이 와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법석이다. 손자는 2학년 손녀는 1학년인데 30분씩만 하라고 허락을 했더니 서로 많이 하려고 다투는데 할머니보다 훨씬 사용을 잘한다.
시간 지났으면 고만하고 할머니한테 편지메일 왔나 열어 보라고 메일을 가르쳐 주었더니 찾았다고 하면서 보여 주는데 , 이상하게 구슬은 음악과 함께 사연을 보내왔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구만리 /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 우리에 사랑도 저 물었네 /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렇게 구슬픈 음악을 보내서 들으며 메일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팠다.

지난 일요일 격동기에 한 생애를 사신 어머니에 영원한 작별을 하고 왔다고 한다. 93세까지 큰 병 없이 사셨으나 한 달 정도 입원 치료하고 계시다가 이승에 생 을 끝내고 본향인 저 세상으로 가셨다고 하는 애절한 사연이다.
나그네 같이 머물다가 가는 인생! 왜? 그동안 모든 것을 웅켜 쥐려고 하였는지? 다 놓고 떠나가시는 것을,
낳아서 길러주신 어머니의 정이 할머니가 된 딸로 지금의 나이지만 슬픈 것은 모두가 같은 것 이라고…
‘하늘 구만리’로 떠난 어머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mother in low 에 대한 감정도 같다고 하면서 슬퍼했다.

어린 녀석에게도 슬프게 들리는 모양이다. “할머니! 슬프세요? 할머니친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할머니 엄마는 어데 계셔요? 응 할머니!” 하고 묻기에, “전번에 서울에서 너희들 아빠 엄마와 같이 생신에 가서 증조할머니라고 했었지? 그분이야, 잊었구나?” 기억이 희미 한가보다. “그럼 증조할머니의 엄마는요?” 계속 궁금해 하는 어린 손주들.

종일 장 담그느라고 애를 써서 그런지 몸이 나른하여 앉아 있는데 어린 것들이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물러 주느라고 야단이다.
간지럽다고 하니까 더 재미있어 하면서 웃는 것 보느라고 더 간지르고 있다. 학년 올라가기 전 봄방학이라고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 기쁘게 해 드리려고 어미아비 떨어져서 자고 갈 것이라고 인심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저녘 때 에버랜드 퍼레이드와 폭죽놀이 보러가자고 조르기에 가보니 너무 일러 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식집에서 어린이 돈까스를 시켜주고, 맛있게 먹는 溯응?보면서 ‘하늘구만리’ 떠난 친구 어머니를 생각하며 창밖에 지는 저녘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명복을 빌고 있었다.

박청자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부회장
용인시여성유도회 회장
수필작가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