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막판에 마차를 바꾸면 안 돼!”
“난 기회주의자가 아닐세. 말이 노회하면, 보다 건강한 말로 갈아타는 게 도리잖아?”
“아무리 대의가 옳아도, 최후판단은 조심해야 돼.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대로 해석하니까.”
염장이 고개를 숙이고 운다.
“후회스럽지? 우리 같은 은원 관계는 구천에 언제나 떠도니까, 너무 애달어 하지 말게.”
“우리의 은원이란 게 뭔가?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거란 말인가? 자네의 충고를 들을 수 없는 내 속사정을 어찌 설명하겠나?”
“그럼 어디 나에게 말을 털어놓게나. 내 비록 구천을 떠도는 몸이지만, 그래도 우린 한 때 좋은 친구가 아니였나?”
장보다 돌아온 마카로니 장고가 슬픈 눈으로 내려다 본다.
“우리가 민애왕을 상대로 싸울 때가 좋았었지. 그 땐 자네나 나나 혈기왕성하고 정의롭고 생의 의미가 넘쳐흘렀지.”
“그랬었지. 그런데 자넨 언제부턴가 너무 권력에 맛을 들이는 듯하던데.”
“권력이란 게 그렇지 않나. 편안함이란 명령과 종속 관계에서 형성되는 인간 법칙이야. 편안한 호사를 극복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도 자넨 신무왕하고 모든 마음을 나누지 않았나? 자신을 알아주는 군신관계가 얼마. 좋은데. 나는 외로운 야전 사령관으로 들풀처럼 살았다네.”
“그럼 뭐하나? 우린 골품이 달라서, 서로 결혼할 수 없는 사이인걸. 내 딸을 왕비로 권하는 애비 마음을 반역으로 여기니...”
“그래도 박 공주는 대왕마마의 후광으로 권력이라도 누리지. 처음부터 자넨 뱃놈인데, 골품 싸움에 골비는 꼴이 됐으니, 자네도 안 됐구만.”
“그래, 노성왕 한테 붙으니 어떻든가? 그가 새로운 현군으로 자넬 잘 아껴주던가?”
“아직 알현도 하지 못했네. 정치판이란게 다 그런 거 아닌가? 자네 보고를 피살할 때는 내가 필요했겠지만, 용도가 끝나면 폐기처분 아닌가.”
“그러니 내가 뭐라 그랬나? 처음부터 왕족들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고. 나도 그놈들이 꼴보기 싫어서 초연하다가, 결국 이렇게 반란자로 효수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미안하이, 내가 자넬 죽이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가 세상을 다시 개편하든가 했어야 했는데. 진짜 골빈 놈들이든 성스럽게 골빈 놈들이든, 골(빈)품새로 봐서는 우리 뱃사람 기질대로 확 갈아버렸어야 했어.”
“그렇게 생각 말게. 다 지난 일이야. 어찌 보면 자네한테 죽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우린 친구지? 팔사육년도에 우리 헤어졌지만, 난 영원히 자넬 잊지 않고 있다네.”
“잊게나, 정치란 게 다 그런 거야. 오늘의 동지도 내일의 적이 돼는 돼지우리야. 모두 뒈지라고 해. 자네 요들송이나 부르고, 솔잎이나 뜯으며 낙향 하게.”
“그런 염장 지르는 소리 말게. 내 이미 백골산에서 은둔한 지 천여년이 지났네. 자네와 같이 바다를 가르던 의리의 시절이 그리울 뿐일세.”
“모두 잊게나. 인생살이가 원래 허무하다네. 모두 잊고 나에게 올라오게나. 내 자넬 기다림세.” 그는 긴 보고를 마치며 좌판에 엎드려 칼잠을 청한다.
하늘로 오르는 보고가 더한다, “정치란 고기 잘 먹는 자가 고길 좋아하는 이치라네.”
꿈속에서 염장이 소리친다, “염장 지르는 소리는 하들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