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스쳐간 광장에 현수막과 종이가 나부낀다.
“삶이란 순간의 이음줄이지? 벌써 카트리나 선거 태풍이 쓸고 간지 일주일이나 되는군.”
“우리네 인생은 습관과 무드의 반복인 것 같아. 십년 전과 겨우 포스터 두께나 확성기의 음질만 차이 날 뿐, 별 다른 게 없지?”
“그러게. 그래서 인생은 연기처럼 돌고 돈다지 않는가. 멧돌이 돌아야 두부죽이라도 쑤고, 콩가루라도 떨어지긴 하겠지만.”
“자네, 언어학자니까, 저 바닥에 떨어진 표어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겠군.”
쓰레받기를 들쳐 업던 친구가 묻는다.
“‘당(黨)을 당당히 떠나는 당신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거 말인가?”
“그래 저 정도의 위트가 있으면, 삭막한 국정 살림살이에 유머라도 있지 않을까?”
“온 몸이 유머에 배어있다면 더욱 바랄 게 없지.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저급성으로 빌려온 글귀로 장난치면, 신중한 사람보다도 더 사고 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저건 어떤가? ‘준비된 시장, 따논 당상.’”
“머그잔에 들어가는 물의 용량이 꽉 차 있다면, 이미 그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채워 넣을 게 없는 사람인데, 어찌 더 채워 넣길 기대하겠는가? 대통령을 겨냥하고 비어있는 사람만이 시장 자리나 꿰찰 수 있지 않겠어?”
“그렇군. 그만한 능력으로 꽉 차있는 사람도 제대로 기대할 게 없는데, 그것도 없는 사람이 머그잔을 채우려하면 비극이겠군.”
“그래, 비운 자만이 어느 자리에서나 아름답게 채우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지. 너무 차있는 자나, 도저히 비울 수도 없을 만큼 부족한 인간들은 처음부터 머그잔을 들고 커피 타는 줄에 서질 말아야지.”
“저기 당선 포스터 글귀를 좀 보게나. 모두 하나같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돼있지. 전부 공무원 서류에 등장하는 말투 같지 않나? 정말 감사하는 속내라도 있을까?”
“전부 판박이 얼굴이지? 뒷짐 지고, ‘그냥 가서 써 붙이고 와’하는 어투가 보이지 않아?”
“당선된 친구들은 ‘당선자’라고 크게 쓰고, 낙선된 분들은 ‘아직 저는 살아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몸을 낮추면서 길게 연서를 쓰는 것 같군.”
“당선자의 내적 거만함이나 낙선자의 공손함을 표방한 아첨도 모두 이기적인 게 문제야.”
“그래, 된 분은 이제부터의 보안관 배지에 어깨 세우고, 안 된 분은 다음 기회를 위해 선술집이나 기웃거리고, 모두 자기중심적인 행태 면에 다 똑같은 족속들이 아닐까?”
“아직 선거판이란 게 투전판이나 똑같으니, 얻은 자나 잃은 자가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저 글 좀 봐. ‘진정한 패자의 웃음을 이해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거 괜찮은데.”
“이건 어때. ‘신비와 모호의 차이점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저거 보게. ‘우아한 거름이 되어 창조하겠습니다.’”
“모두 새롭게 느껴지는군. 언어로 사기 치는 속임수만 아니라면, 얼마나 윤택한 표현인가!”
“그러게, 우린 언제나 멋진 언어로 서로 웃으며 경쟁하는 선거를 볼 수 있을지...”
“언어도 다루지 못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국정을 다룬다고 하는지 참, 그래서 거창하게 외치는 선거 구호가 거짓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큰일이지. 언어도 다스리지 못하는 하이에나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마음을 다스릴지...”
“그래서 서민들은 몇 년을 또 이제나 저제나 동구 밖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겠지.”
광장에 버려진 선거 쓰레기를 치우는 노란 복장들이 푸념한다. ‘버리는 자 따로 있고 치우는 자 따로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