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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속에 버려진 한국인의 의식

용인신문 기자  2006.06.26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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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진짜로 미사일을 쏠까요?” “글쎄,”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요즘 회자되는 대포동 미사일 신문 기사를 보며 말한다.
“북한이 왜 저렇게 수레 소리 요란하게 미사일 공포심을 자극할까요?”
“글쎄 말야. 진짜 한번 붙어보겠다면, 가미가제식으로 그냥 진주만을 습격하면 될텐데.”
“옛말에 말만 앞세우는 엄포는 두려울 게 없다고 하던데, 이것도 그 짝 아냐?”
“전에도 미사일로 50일간이나 협박해서, 미국이 양보했는데. 이미 속내를 꿰뚫고 있는 미국이 또 그냥 속아줄까? 문제는 한국인 전체가 손해보는 게 있을 거야.”
“그들이 우릴 어떻게 보느냐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알아야지. 미국 온건파들도 대포동 기지를 선제폭격해도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6.25를 다시 일으킬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잖아.”
“미국은 북한의 행태를 양치기 소년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거야. 국제적으로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잖아. 북한을 깔보는 국제사회 분위기에서 남한사람은 같은 한국인이라고 북한을 동조하는 심정이 생기고...”
“그렇지? 저들은 애초부터 불쌍한 협상용이라고 눈길도 안주던데. 아예 쏴볼테면 쏴보라고 하는 투잖아. 태평양 한 가운데서 요격할 자신이 있다면서, 한번 실제 성능 검사하고 싶은가봐.”
“애당초 거인과 소년의 싸움이니, 실제로 쏘지는 않겠구만.”
“그러니 문제지. 힘이 딸리니 쏠 수는 없고, 협상하는 기술도 없어 국제사회에서 소외 당하고. 한국인이란 같은 핏줄끼리 너무 초라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슬픈 일이야. 우리 한국인들의 역사적 신세를 보는 듯하여 처량하이. 사실 우린 같은 동질적 심정이 있어서, 아무래도 미국보다 북한에 대해 더 동정적인 것 같아.”
“그렇지만 북한이 타협이 잘 안 된다고, 화내듯이 미사일 자작극을 벌이면, 누가 좋아하겠나? 무모한 치기로 볼 수 밖에 없잖아.”
“그러니 외국인들이 한국사람은 모두 저렇다고 생각할 거 아냐? 난 이럴 때마다 우리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느끼게 되네.”
“물론 우리의 고집대로 자기 주체성, 자주국방이 필요하지. 그러나 내 생존을 위해서는 타협과 유화적 웃음 또한 필요하잖아? 아부나 고집이 아닌 어울림의 미학 말야, 우리 심성은 좋게 말해서 순진, 올곧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타협적이고 고집스러운 것 같아.”
“사실 극단적 행위는 오히려 행동하기가 쉬워. 그러나 미세한 중간 단계는 쉽게 구분이 안 되서 더 신중해야 하는데. 서구인들은 이 모호한 중간단계의 타협성에 능숙하잖아.”
“모든 현대사회 가치는 단선적이지 않아. 복잡한 가치와 형태 속에서 슬기롭게 살자면, 정말로 처신을 잘 해야 하는데. 뭐, 곧 장마철이 시작되니, 좋은 구실은 돼잖아?”
“그러나 한국인을 싸잡아서, 신의와 타협감이 부족한 민족으로 오해할 수 있잖아. 편견이란 반복적인 행위의 결과물인데. 원래 저런 애들이라고 오판하면 큰일 아냐?”
“힘 있을 때, 아량과 타협이 가능하지. 약자면서 타협하자면 콧방귀나 맞지. 그래서 저런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까?”
“왜 시니컬한가? 왜 저렇게 해야 하는지, 우리 정서나 상황적 심정을 이해할 외국인은 아무도 없다고 보면 맞아. 허풍만 치는 양치기보다는 슬기로운 여우가 되는 수밖에 없어.”
“김구의 가치론적 심정과 이승만의 실용적 감성 중에서, 무엇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