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한 천막이 김량장동 금학천변 약 1km를 긴 띠로 수놓는 용인 5일장.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멀리 수원에서도 장구경 삼아 아주머니들이 무리지어 찾는다. 머리에 알타리 무를 한보따리 이어 얹고 양손에는 장바구니를 들은 아주머니. 5일장을 별러 모현에서 버스를 타고 먼길을 찾아왔다. 이동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머금고 채소 찌꺼기를 처리하기 위해 닭 8마리와 오리 8마리를 샀다고 말한다. 병아리 한 마리에 1200원이라고 주인 아저씨가 기자에게 살 것을 권한다. 남사에서 온 할머니는 4만5000원짜리 강아지를 깍고 깍아 4만1000원에 샀다. 꼬깃꼬깃 두루마리 화장지에 싼 쌈짓돈을 꺼내 값을 치르는 모습.
인파로 북적대는 5일장. 닭이 퍼득이고, 강아지가 끙끙거리고, 강정을 만들기 위한 널직한 판 옆에는 조청을 녹이기 위한 커다란 양은솥이 불 위에 놓여있고, 길이 떠나가라하고 뽕짝을 틀어대며 불구의 몸으로 땅바닥을 간신히 기어다니면서 좀약을 파는 아저씨. 인생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는 서민들의 무대.
지난 25일에도 어김없이 장이 섰다. 상설 시장인 용인시장과 잇대어 서는 바람에 한때는 용인시장 상인들이 5일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재래 상설시장안은 텅텅비게 마련. 시민들이 모두 천변에 늘어선 5일장으로 몰려들어 시장 상인들의 매출액은 바닥이 되고, 대신 외지 상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5일장은 떼돈을 벌기 때문에 용인 상권을 중심으로 5일장 폐지 움직임은 불같이 일었었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지난해까지만해도 5일장 하루 매출이 3억, 한달 18억~20억, 1년 200억 규모라고 했다. 물론 5일장 상인들은 펄쩍 뛰면서 앓는 소리를 하게 마련.
용인시장 선거때 시장 상인들의 표를 의식한 시장 후보는 5일장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그 공약에 의해 천변 도로인 시장거리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또 장이 서지 못하게 화단까지 일궜다. 최근 수년간 노점상인 5일장을 없애기 위해 끊임 없이 진행되던 시와 시장상인들과 노점상의 갈등. 그러나 이제 용인 상권의 드세던 기세는 한풀 꺾이고 오히려 5일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용인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새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설시장과 잇대어, 그리고 5일장이 5일마다 서는 복판에 LG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상설시장 상인들이 5일장을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형마트로 손님이 몰리면서 5일장은 댈게 아니게 매일 손님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5일장 손님들 덕에 상설시장에도 손님이 드니 이제는 5일장이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용인 김량장동 5일장은 언제부터 서기 시작했나.
박용익 용인향토문화연구회장(72)은 용인 5일장 역사는 90년 안쪽이라고 말한다. 구성면에서 서던 장이 일제시대인 1910년대에 김량장동으로 옮겨왔다는 것.
"아마 46년, 47년 정도일거야. 광목이나 옥양목, 소창 등 무명천에 먹일 풀을 쒀서 팔던 풀집이 있었어. 풀쒀 팔면서 국수도 만들어서 팔았고 인절미와 막걸리도 팔았지."
지금은 사라진 5일장 옛 풍경. 60년대 초까지 주막거리며 장국밥집도 있었다. 인절미를 만들기 위한 떡치기도 있었고, 소나무 가지만 묶어 파는 삭장구도 있었고, 지게짐 장작, 마차에 실린 장작, 물감, 뻥튀기, 사발꾼들의 막사발, 자반고등어, 문종이, 색종이 등 추억속에 묻힌 정겨운 풍경이 5일장 기억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6. 25 때 잠깐 공백기를 빼고는 51년부터 곧바로 장이 섰다. 모현사람, 포곡사람, 양지, 이동사람이 다 모여 콩자루, 쌀자루 하나씩 들고 술막다리 근처에서 돌아가는 소문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