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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이 동승에게 들려준 이야기

용인신문 기자  2006.12.04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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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사찰에서 노스님이 동승을 부른다.
“얘들아, 오늘 공부를 해야지?”
“스님, 오늘은 좀 신나는 얘기 좀 해주세요. 네?”
“뭘 듣고 싶은 게냐?” “아무 거나 해주세요.”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곤 천천히 옛날 얘기를 꺼낸다.

“옛날 옛날에 고주몽이가 TV에서 활을 쏘던 시절에,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단다. 그는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귀향 온 아이처럼 힘들게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백성들의 부름을 받아서 임금이 되었단다. 그는 자신이 강화도령처럼 자라서 백성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지. 그래서 백성들 중심으로 정치하겠다고 다짐 했단다. 나라는 백성의,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통치라고 생각했지. 그는 여러 가지 제도를 고치고, 가난한 서민들 중심으로 정책을 펴나갔어. 속으로는 좀 더 과감한 백성중심의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훈구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원하는 대로 일 할 수가 없었단다. 한 나라의 임금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푸념하기도 하고, 왕비한테 눈물도 흘리며, 구중심처에 홀로 외로워 하기도 하였단다.

그러다가 세자 혼례도 하고, 왕족 중에서 인사 청탁과 뇌물 문제로 혼줄나기도 하고, 조정에서 자기를 임금으로 세워준 공훈대신들이 비리에 얽매이기도 하고, 왕족혈통 상의 과거성을 들추어서 족보에 대한 시비를 붙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정신 이력 면에서도 너무 서민 중심의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은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도원결의한 사람 수가 한정되다 보니 외부 인사 기용 문제도 원만하지 않고, 토호세력과 훈구대신들의 자본정치를 극복할 힘도 점점 쇠진하는 듯하고, 자기를 밀어준 반정세력들도 점점 떠나가는 듯도 하고, 그렇고 그래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임금 노릇하기 힘들다고, 군왕자리를 내놓겠다고 발표를 떡 했겄다. 세상은 들끓었지. 재위 임기도 못 마치는 임금이 될까봐 걱정하는 소리가 상궁이나 내신들로부터 새나오다가 갑자기 터져나왔으니 놀랄 수밖에. 정적들은 또 한번 원맨쇼 한다고 난리였지. 전에도 곤란한 시기에 승부수를 띄우더니만, 이번에도 임기 화투로 위기를 돌파할려는지 혀를 내둘렀어. 완전히 게릴라식 전법이라고 의심했어.

그는 임금이 될 때부터 소수파로 등극하였기에 항상 수세에 몰리는 강박증에 걸려 있었단다. 거기다가 외롭게 자라서 고집도 쎄지고 외골수적인 성격이 강했지.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는 정면 승부하는 강한 기질도 있었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너무 거친 파도를 던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단다. 처음부터 임금노릇 못 해먹겠다는 말을 자주 뱉어놓고, 측근비리가 터지자 재신임을 묻기도 했단다. 정치적으로 서로 대연합할 때는 2선에 물러나서라도 새로운 왕정을 펼쳐보겠다고 약속도 하고, 어느 때는 초야에 뭍혀 살고 싶다며, 임금 재위 기간이 너무 긴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지. 그러다 어느 날 임금 노릇을 중간에 그만두는 첫 임금이 될까봐 걱정한다고 심정토로하기도 했어. 그러다가 전격적으로 작전하듯이 하야를 결정하더구나.“

그는 잠시 숨을 고른다. 동승이 초롱한 눈으로 묻는다.
“임금 노릇이 재미 없으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러나 음모나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문젠기라. 또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제스처 쓰는 것이라면 더 문젠기라. 임금 자리가 무슨 장기판이니? 판 흔들고 싶다고 중간에 판쓰리 하면 안 되지. 책임 없는 사람은 애초부터 모략가가 되기 쉽다고 성현들이 말씀하였는데, 거 틀린 말이 아니제. 임금 정도면, 깊은 인내와 책임으로 헌신해야 되지 않겠니? 얘야, 너는 다음에 커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예, 전 임금 될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으니 걱정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