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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역사 연구하는 그림쟁이”

처인성 항몽승첩도 그리고 연구 논문도 발표

용인신문 기자  2007.07.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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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미술협회 창립 밑거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의 조용한 숲길을 오르면 이상학 화백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마당에 고라니도 오고 족제비가 새끼를 낳기도 한다는 외진 곳에서 그는 혼자 그림을 그린다. 1978년 용인에 내려왔다고 하니 1년만 더하면 딱 30년 세월이다. 그 세월이 말해 주듯 그는 용인 문화의 산 역사다. 용인의 자생적 문화 예술이 싹틀 수 있는 뿌리 혹은 거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 전, 용인에 문화적으로 향유할 만한 것이 없고, 미술협회 뿐만 아니라 예술단체가 하나도 없던 시절, 그는 미술협회 지부를 만들기 위해 용인에 있는 ‘그림쟁이’들을 찾았다. 쉽지 않았지만 용인군지 집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덕분에 용인 출신 학자들과 예술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한 둘 씩 찾아내 1989년 작가 몇몇이 용인문화원 초대작가전을 개최하면서 예술인들이 조금씩 더 모이기 시작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초대작가전이 성장하며 1997년 용인미술협회를 창립할 수 있었다. 15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용인미협은 지금은 회원이 100명이 넘는다. 미술협회가 창립한 지 이제 10년이 됐다.

# 초현실주의 철학을 그리는 작가

용인 미술협회가 창립된 뒤 그는 작품 활동에 매진했지만 어려서 다친 눈 상태가 점차 악화되면서 지난해에는 계획했던 극사실주의 작품 전시회를 포기했다. 지금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수술 날짜를 받아 놓은 상태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접었지만 대신 그는 또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그는 “어떤 작가는 자기 속에서 나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철저하게 그림 속에 이야기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메시지를 담는 편”이라며 자신을 초현실주의 작가로 표현한다. 세밀한 기법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공상과 환상의 세계 속에서 표현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완전 추상의 작품도 그린다. 그가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도 있다. 역사기록화가 바로 그것이다.

# 거짓을 그리지 않겠다는 열정

그는 17년 전인 1990년 용인군의 의뢰를 받아 처인성 항몽승첩도(2m×4m)를 제작했다. 수 년 간의 고증과 연구 활동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같은 시기에 광교산을 배경으로 한 임진왜란 전투와 병자호란 험천 전투도 그렸다.

항몽승첩도에는 많은 땀이 배어있다. 몽골군이 침략할 당시 몽골의 군 복식, 무기까지 파악하기 위해 육군본부 전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등 국내 고려사와 전쟁 관련 사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한 것은 물론 영국, 일본, 미국, 중국, 몽골 등에서 나온 사진과 서적 등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전쟁과 관련한 기록화들 가운데는 상대편을 작게 그린 거나 적군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그림들이 많은데 그는 연구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 몽고군의 특징과 전세, 처인성의 지형 등을 자세히 살려 그렸다.

화가였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한 덕에 그는 몽골군이 투구와 갑옷을 착용하고 전시에도 특유의 게르와 우마차 등을 사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연구결과들을 썩히지 않았다. 1999년 ‘동북아민족 역사와 문화 및 샤머니즘 사상과 13세기 몽골군 복식형태’라는 논문을 완성해 발표했다. 13세기 몽골군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인정하는 전문가다.

# 화가로서의 완성, 개인전 준비

젊은 시절에는 강원도 정선군의 탄광촌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에 빠져 지내며 주위의 도움으로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던 그는 건강 문제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를 교육당국에 기증하고 1978년 용인으로 내려왔다.

그림을 그리고 학교를 만들어 기증하는 등 돈 안 되는 일에만 몰두하고 생활을 돌보지 않았던 탓에 초등학교 선생님인 그의 부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3년 전 퇴임한 부인은 자녀들이 있는 서울과 이 화백이 있는 용인을 오간다. 눈 수술 계획도 있고 혈압도 높아 이 화백의 가족들은 서울에서 지내자고 권유하지만 그는 이제 내년 또는 내후년 쯤 개인전을 열 계획에 용인을 떠나지 못한다.

“너무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아직까지 개인전을 갖지 못했는데 그건 화가로서 완성을 하지 못했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그는 용인에서도 전시회를 할 계획이다. 건강 때문에 작품을 그리는 속도가 더디지만 서둘러 작품을 그리려는 것은 전시회 후 연구할 과제도 있기 때문이다. 한옥 기와에서 발견한 부적도 연구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림 그리랴, 연구하랴 바쁜 그가 젊은 비결인 듯하다.
<글 / 유성민 객원기자>

■ 이상학 화백 주요 약력
1963~68년 학교법인 삼정학원 설립, 1982년 프랑스 파리 살롱 드 메 선정작가 초대전, 1984년 미국 LA 올림픽 기념 세계 100일 선정전, 198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1995년 일본 육의원화랑 초대전, 1997년 용인시 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1998년 현대미술 8인의 시각전 초대전, 1999년 제 13회 한국예술문화총연합회 예술문화상 공로상 수상, 2005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초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