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 안치고 뭐하냐. 순사가 소리 지르면 무서웠어."
경기(용인)가정복지상담소(소장 신연화) 강의실에 마련된 무료 한글 교실에 나온 68세된 할머니는 12살 시절을 떠올렸다.
배우고 싶어도 못배웠던 시절. 아버지는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시집살이 심하다는 편지나 쓰면 못쓴다며 딸을 공부시키지 않았다. 아들은 독선생까지 모시고서 한문 공부를 가르쳤던 아버지. 지금 그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얼마나 공부가 하고 싶었으면 일본에 공출할 가마니를 짜다가 야학하는 교실 뒤에서 어깨너머로 귀동냥을 했을까. 그때 귀에 익고 눈에 익은 한글로 55년여 세월을 버텼다.
무료 한글 교실에 나온 60, 70대의 할머니들은 할말도 많고 사연도 많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먹고 살기 어려워 공부 할 수 없던 할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어머니 집에 맡겨져 학교 다니는 사촌 형제를 부러워해야만 했던 할머니, 딸은 배울 필요 없다는 잘못된 보수적 사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할머니.
신연화 소장이 마련한 배움의 공간. 7명의 할머니가 내뿜는 배움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신연화 소장은 재미있는 대화를 섞어가면서 즐겁게 가르친다. 따라서 교실 분위기는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할머니들은 삶의 연륜 만큼이나 노련하게 글을 터득한다.
한글 학원에 두달 다니다 먹고살기 바빠 그만둔 할머니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글을 배워보려고 애썼던 할머니들이다. 평생의 한을 풀어가고 있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상급 학교도 진학해보고 싶다고.
이제 글을 터득한 할머니들은 손주 손녀에게도 떳떳해졌다.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손녀가 뭘 물어보면 막막했던 할머니. 이제는 손주 손녀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글 숙제를 하는 것을 사위가 봤다며 부끄럽다고 말하는 할머니. 그렇지만 하나도 부끄러운게 아니라고 신 소장은 일러준다.
평소 한글교실의 필요성을 느끼던 신소장은 용인문화원 부설 노인대학 학생들 가운데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가 있자 지난 5월 27일 한글 교실 문을 열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오전 10시~12시) 열리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할머니들이 완전하게 한글을 구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할 계획이다. 더나가 숫자 계산까지 가르쳐 볼 생각도 하고 있다. 신 소장은 생활 속에서 겪는 불편을 덜어주고 싶어한다. 은행에서 예금 찾는 용지를 들고 와서 실습도 해볼 생각이다.
할머니들은 거리에 나가면 와도 보이고 워도 보인단다.
어떤 할머니는 선생님한테 고맙다며 벽걸이 선풍기를 사왔다. 떡을 싸오는 할머니, 김치를 싸오는 할머니. 정이 오가는 훈흔한 교실이다.
신소장은 평소 신문 사이에 끼어오는 전단지를 모았다가 할머니들한테 연습장으로 엮어 사용하게 나눠준다.
"집에서 자꾸 연습해야 해요. 그래야지 잊지 않아요. 다음에 올때는 연필로 쓴 위에다가 볼펜으로 덧써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