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7세된 박삼순 할머니(포곡면 유은리).
박 할머니는 다락방에 보관하던 보따리 하나를 꺼내 보인다. 그 안에는 할머니가 용인이씨 문중으로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손수 지어준 광목으로 만든 속고쟁이 두벌, 버선 2켤레가 들어있다.
할머니는 23세에 서울에서 시집을 왔는데 옷은 시집 오기 전인 17세때부터 친정 엄마가 하나 둘씩 정성스레 만들어 둔 것들이니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솜씨다. 구한말을 살던 친정엄마가 조선시대의 복식 방식 그대로 지은 옷들. 집안이 넉넉했던 할머니는 철철이 입을 옷을 바리바리 싸왔다. 방바닥에 꺼내 펼친 속고쟁이는 시집온 후 한 번도 입지 않아 친정 엄마가 옷을 다 지은 후 빨간실로 허리띠를 접어 봉한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다.
"다 없앴어. 남도 나눠주고 6.25 때 잃어버리고, 태워버린 것도 있고. 이것도 태워버리려다가 언젠가 박물관같은델 갔는데 이런 옷이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이것도 그런데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관하고 있었어. 전시할 곳 있으면 거기다 줄거야." 잠시 후 할머니는 옷장을 열어 또다른 보따리를 꺼 펼친다. 그 보따리에도 옷가지들이 채곡채곡 접혀 보관돼 있다. 먼저 세상을 뜬 할아버지 의복이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토시며, 쌈지, 저고리, 조끼 등 한 번도 입지 않은 새옷들이 아깝게도 곳곳에 좀이 슬어 있었다. 옷이 많던 할아버지는 채 다 입어보지도 못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모란꽃을 수놓은 빨간공단으로 만든 복주머니 두 개도 꺼내놓는다. 부귀다남이라는 글씨도 수놓았다.
참으로 소박하고 예쁘다.
할머니 또 구석을 뒤져 뭔가를 가져온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갓 보관 함. 꺼내봤더니 할아버지가 11세때 장가들 때 썼다는 왕골로 만든 초립동과 말총으로 만든 갓이 소중하게 보관돼 있었다.
또 있다. 조선말 내금위장으로 있으면서 고종황제를 모신 시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서류가방이며 쇠징이 무수하게 박힌 가죽신 등 할머니 방은 보물창고 같았다. 옛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온 할머니.
할머니 집도 초가집이다. 지은지 100년이 넘은 지방 세력가의 집. 겹겹이 이엉을 얹어 지붕 두께가 수십센티에 달한다. 마당에는 100년 넘은 귀한 나무도 많다. 넓은 뒤뜰에는 장독대 옆에 터줏가리도 서있다. 처마에는 싸리빗자루도 매달려 떪? 할머니 집은 있는 그대로 송두리째 민속 자료다. 할머니 집이 이렇게 원형을 유지한 채 보존될 수 있던 것은 할머니 대를 이어 아들 이광섭씨의 옛것을 닦고 보관하는 정성 때문이다. 시골 선비 가문의 고고한 기풍도 집안 가득히 보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