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경계’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의 경계죠”
2008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된 이은규(30·본명 이은실)씨의 당선 소감이다.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연인’에 비유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연인들 사이처럼 갈등과 고비를 겪게 마련”이라며 창작의 고통을 토로한다. 그러나 시의 갈등은 헤어짐이 아닌 완성에 목적이 있다고. 그래서 그는 시를 쓰면서 느끼는 갈등을 헤어짐이 아닌 완성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이시인은 1978년 서울에 태어나 7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그만 둔다. 그러다가 8살 때 광주로 이사가 다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광주대 문예창작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서정주 시인으로부터는 광기를, 박용래 시인으로부터는 순정을, 그리고 박해람 시인으로부터는 시의 목소리를 배웠습니다”
시인은 “객지에서 새움을 틔우는데 도움을 준 박해람 시인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안내했다”고 말한다. 아울러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용인문학회 회원들을 통해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시인은 학교 공부를 마친 후 용인에 정착해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는 처인구 고림동 영화2차아파트 부녀회장인 홍명표씨다. 그리고 아버지는 해병전우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이종환씨다.
이시인은 용인에서 2년째 논술강사를 하고 있다. 장래의 희망을 묻자 학업과 병행해서 시를 쓰고 싶단다.
시인은 상복이 있나보다. 지난해 연말엔 문화예술진흥위원회로부터 창작지원금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 만큼 부담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보람이리라.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는 “일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기 보다는 관념에서 시를 끌어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추상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의 시는 작품을 관류하는 활달한 상상력 덕분에 요즘 시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느낌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와 진술의 어울림이 주는 감흥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8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
이 은 규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집마저
허물고 말겠다는 불편한 소식을 싣고 온다지
그러나 침대위의 영혼에게 종종 닿는 소식이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
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은
바람의 낮은 목소리만이 읊을 수 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
地名을 잊는다, 한 점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