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관람객이 유쾌하게 소통하는 그림,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
그림으로 이야기 하는 작가 최석운을 만나기 위해 양평을 다녀왔다.
최석운은 고독이 뚝뚝 떨어질만큼 휑한 공간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절대 고독과 싸우는 그에게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그의 그림 인생 전체가 싸움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림의 본질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왔던 최석운.
그런 결과 그는 자신이 그림 그리는 이유를, 그림의 존재 이유를 발견해 냈다.
초기에는 사회 풍자나 해학, 요새는 절대 고독, 외로움 같은 것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또 어느쪽으로 방향을 틀어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그의 그림 앞에서 관객들이 웃고 떠들고,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동물과 함께 하는 그림
“돼지 작가라고 알려져 있던데요.”
“내 그림에서 돼지 그림은 아마 1%도 안 될걸요.”
그의 말대로 그는 돼지 작가가 아니다. 그의 그림에는 돼지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개, 쥐, 까치, 바퀴벌레 등 다양한 동물이나 곤충이 등장해서 사회를 희화화 한다든지 풍자하는 제재로 사용되곤 한다.
사람과 함께 등장해서 조연 노릇을 하는가 하면 떡하니 주연 노릇을 하는 동물도 있다. 주연이 됐든 조연이 됐든 그들은 그림속에서 관람자에게 말을 걸고, 시비를 걸고, 대단한 입담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소통의 창구역할을 한다. 최석운은 동물을 통해 사람들의 맘에 담아뒀던 은밀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도록 돕는다.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동물이나 곤충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재미있고 유쾌하고 친근한 것이다.
그는 어느날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던 바퀴벌레를 그림에 등장시켜보았다. 쥐도 그려 넣었다.
“강자와 약자, 음모 등 시대 상황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도구였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죠. 나는 심각하고 무서운 대상을 그린 것인데, 사람들은 웃었어요.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이죠.”
#조선후기 김홍도 신윤복 등에서 그림 그리는 이유를 찾다
“제가 배웠던 미술은 현실에서 멀리 있는 미술이었어요. 외국에서 고민하고 유행했던 것을 우리 것인양 해 왔던 것에 불과 했죠.”
그림 그리기에 회의를 갖다가 그는 조선 후기 김홍도나 신윤복 장승업의 그림에서 현실적으로 누구나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점을 발견했다.
실학의 영향으로 사대부 중심의 사회에서 일반 대중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반가왔다. 풍자와 해약이 중요 키워드였다. 직접 까발리지 않고 덮어씌워 놓은 그림. 그것은 아주 재미있고, 그러면서 웃기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조선 후기의 미술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실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이쁘고 보기 좋은 쪽으로 무기력해짐을 알았다. 또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비참한 현실을 뒤로 한 채 외국의 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입, 정체성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사회 참여 그림은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양평 시절-고도에서 절대 고독을 그리다
92년에 그는 자신의 본거지였던 부산을 떠나 양평으로 왔다. 부산에서 기반을 잡을 무렵에 내린 결단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외지에 떨어진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자기와 싸움을 했다. 까치 구름 산 나뭇잎 등 자연적인 소재거리가 풍부해졌다.
그는 몇 개월 제주도에서도 작업을 했다. 제주도 흑돼지가 등장을 하게 되고, 제주 해녀의 모습도 그렸다. 예쁠 것만 같던 해녀들이 실상은 고단한 삶과 싸우는 힘든 모습의 할머니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작품에 등장시켰다.
우도를 보는 순간 인어가 떠올랐다. 인어는 왜 예쁜가, 남자 인어는 없는가. 역시 최석운다운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변신한 기형적인 인어가 탄생했다.
못생긴 아줌마 모습의 인어, 또는 인어 아저씨도 태어났다. 독창적이고 기발한 발상이다.
요새는 그림의 주제가 인간의 공허함, 근원적인 외로움, 고독 등 정신적인 문제로 옮겨갔다. 아무리 즐겁고 행복해도 숙명적인 두려움, 슬픔, 고독,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에 그려낸다.
“미술사에 나오지 않는 그림, 내 그림을 보면 내가 떠오르는 그림, 아무도 안 그린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 졸업한 최석운은 수십회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졌으며, ‘그림으로 만나는 우리 동시’(천둥거인), ‘시집간 깜장돼지 순둥이’(샘터사) 등 다수 의 동시, 동화책 그림도 그려 어린이들과도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