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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보금자리 같은 인물상

강남에 단골 많아…동글동글 모난 곳 없는 조각들
2008한국미술BEST3/조각가 이경재 (참여작가)

박숙현 기자  2008.0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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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경재.
친근하고 다정해 보이는 인물 조각으로 유명한 이경재씨 작업장을 찾았을 때 그는 한창 작업 중이었다.

비닐하우스 작업실을 만들어 쓰고 있는 그의 작업장에 멋모르고 들어선 순간, 돌먼지와 함께 달려드는 엄청난 굉음에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귀마개를 끼우고 작업을 하죠. 괜찮습니다.”

작가들의 산고와 맞닿뜨리는 순간, 작가들의 작품 사랑이 애틋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밀려왔다.

“작품은 제가 직접 가지고 가서 설치해줍니다. 시집 보내는 자식 같기 때문이죠. 놓을 자리도 봐주곤 합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괜히 팔았다고 후회가 들지만 어쩔 수 없죠.”

서울 강남의 좋은 아파트에는 하나씩 놓여 있다는 이경재의 조각.
제작 하기가 무섭게 시집 갈 곳이 대기하고 있으니 낳은 정 기른 정이 따로다. 하지만 이경재의 자식 같은 조각품들은 그곳에서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 이경재의 애잔한 마음을 달래주리라.

#동글동글하고 아담한 인물상
작품들은 이경재씨 처럼 동글동글 하고 친근하게 생겼다. 엄마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부부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모난 곳이라곤 없다.

동심의 세계, 혹은 어릴 때의 추억이나 가족, 부부간의 다정한 대화, 따스한 관계 같은 평화로운 내용을 담아내기에 모난 곳이 없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죠. 사랑이죠. 근본적인 문제를 펴나가고 있다고 봐야죠.”

그는 20년 이상을 여성, 남성, 아이, 가족, 부부 등 인물을 다뤄왔고 지금까지 이경재 매니아층을 형성시키면서 관람객들로부터 꾸준하게 사랑받아 오고 있다.

서울 강남의 좋은 아파트에는 다 들어간다는 말이 사실일까.
“시장이 좋아지고 있어요. 삶의 수준이 높다보니 자연스레 놓고 싶어 하는 거죠. 그림 소장가들이 조각도 갖고 싶어 하는 거에요.”
소장가들은 이경재의 작품을 보면서 추억을 반추하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동물도 다뤄보려고 해요.”

20여년을 꾸준하게 다뤄온 작품에 변화를 시도할 뜻을 밝힌다. 그의 작품은 대작 보다는 1~2m 크기로 집안에 놓기 편한 사이즈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사이즈가 부담스럽지 않아 이경재의 작품은 집안에 친근감을 주면서 더욱 따스한 보금자리라는 느낌을 더해준다.

#조각가의 길
조각 공부를 하기 위해 교수님 따라 대학교를 선정할 정도로 조각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각가의 길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1980년대 후반 이태리 까라라 국립미술 아카데미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서 8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당시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피렌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두 작품이 팔린 것이다. 당시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때였다. 그러나 뚜렷한 정체성으로 작업하는 이경재에게는 이태리에서 비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태리 유학도중 평생의 큰 수확(?)을 안고서.

부인 박민정씨를 만난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올린 박민정씨 역시 조각가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의 작가다. 두 사람은 철저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견지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경재씨가 부드럽고 절제된 대칭성을 간직하고 있다면, 부인 박민정씨는 터프한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다.
#단순화 된 절제미
그의 작품은 모든 작품이 시리즈를 이루는 듯 한 착각을 줄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는 추상까지 넘나드는 현대 조각의 다양한 흐름에 게의치 않는 이경재만의 고집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는 좌우 대칭의 형태로 안정감과 평화로운 느낌을 주면서 신체의 단순화된 절제미를 보여준다.

박숙영 교수(이화여대. 조형예술학)는 “이경재는 인체 표현의 다양한 미술사적 흐름과 상관없이, 그리고 시대의 경향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자신만의 고유한 운율과 질서 속에서 인체를 변형시키고 있다. 어떤 작가들이 인체를 분해하고, 추상성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인간 형상의 변형으로 현대성을 드러낼 때 이경재는 대리석이라는 고상한 재료를 조각하여, 하나의 볼륨, 부동적인 정면성, 무게감, 대칭의 형태로 원형적이고 시간을 초월한 고전주의 방식으로 인체를 표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단순한 비례, 부드러운 기하학적 형태의 몇 개의 덩어리가 유기적으로 구성된 신체의 구조, 그 속에 절제된 볼륨으로 함축되어 있는 신체의 골격, 우연성이 배제된 부드러운 윤곽면, 부분의 대담한 생략, 구 형태로 단순화 한 매끈한 얼굴 등 이 모든 표현 방식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따뜻한 정신세계로 이끈다”라고 말한다.

이경재의 작품은 마음에 평화와 안정감을 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추억을 반추하게 하고, 소곤소곤 대화하게 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해 준다. 이경재는 행복을 들려주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