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읍 상현리에 이르러 자동차로 몇 바퀴를 돌면서 물어 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심곡서원을 찾은지 벌써 몇 번 째 인가.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수 십 번을 찾은 곳이라 눈을 감고도 훤한 곳이라고 자신했지만 이 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어지럽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 숲에 초라한 모습으로 어렵게 우리를 반기는 서원은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심곡서원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조광조의 묘소가 바로 인근에 있기 때문에 그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일찍부터 지방 유림에서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그 때마다 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먼저 모현면에 있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을 제향하는 충렬서원에 입향하였다가 1650년(효종 1년)에 창건하여 그의 위패를 이 곳에 옮겨오게 되었다. 설립과 동시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을 받았는데 글자 그대로 깊은 계곡 속에 위치한 서원이었으니 그 자취의 은은함이란 어디에 비기었겠는가. 이제는 아파트 숲속에 포위되어 그야말로 도심 속에 묻혀 있으니 은은함이 서린 곳이 아닌 도심 속 깊은 곳에 묻힌 곳이 되 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한말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없어지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그 중요성이 조정에까지 미친 곳이고, 선현 제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온 자랑스런 우리 용인의 문화 유적이 아닌가.
구릉을 등지고 경사지에 자리잡은 심곡서원은 외삼문과 내삼문, 사당을 중심축으로 배치하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서원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사우(祠宇)에는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조광조의 영정을 새로 봉안했다. 일조당(日照堂)은 강당으로 사용되는 장소인데 목판벽(木板壁)으로 각 칸마다 판자문비(板子門扉)를 달아 사면을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일조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에서 회합과 강론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재실은 원생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곳이다. 장서각에는 원래 67종 486책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1985년에 도둑이 들어 대부분 도난 당하고 현재는 정암집(靜菴集), 조선사(朝鮮史) 등 몇 권의 책 만 남아 있다.
요즘에 들어 건물을 보수하느라 경내의 건물 주춧돌을 바꾸고 담장을 새로 하고 기와를 올렸는데 그 모양이 가관이다. 담장벽은 벽돌로 가痍궐?쌓고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를 했는데 유적을 복원했다고 하기보다는 완전히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 담장이다. 기와는 프라스틱으로 찍어 올렸는데 한 눈에 보아도 식상하게 올려 놓은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이 서원은 매년 2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품(祭品)은 4변( ) 4두(斗)이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7호로 지정되어 있고, 원내에 있는 수령 500여 년의 느티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의 재산으로는 전답 4,700평과 임야 등이 있다.
지금은 난개발로 아파트 숲에 싸여 서원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고, 더군다나 서원 담을 바짝 끼고 대규모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문화 유적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보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