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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슴속 마음의 정원을 그린다

5.서양화가 한병국 (참여작가)
꽃향기 가득한 작업실…일본인들 매니아층까지

박숙현 기자  2008.03.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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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그리는 한병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원을 그린다. 그것도 마음의 정원을.

마음의 정원을 그리는 서양화가 한병국.
그의 화실에 들어서는 순간 꽃 내음이 확 하고 번진다. 강렬하게 붉은 빛을 띤 커다란 꽃송이가 방 이곳 저곳에 놓여있으면서 눈으로 한 가득 들어온다. 바닥에도 그리던 꽃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마음에 정원을 만들어 마음으로 보고 느낀 색과 느낌을 캔버스에 그립니다.”

그는 마치 어린이들이 뛰놀고 유희하면서 모래성을 쌓고 지우듯 그렇게 즐겁게 작업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 즐거움을 전이시킨 듯 같이 즐거워지는 것 같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송이들의 향연.
반 추상의 번지는 듯한 자유로운 붓 터치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 뜰에 한 가득 피어있는 꽃 때문이다.

그의 꽃 그림은 열정적이고 강렬한가 하면, 더 이상 화사할 수 없을 만치 밝고 경쾌하다.
보는 이들도 열정적이고 화사해진다.

#일본인들로부터 높은 인기
한병국의 꽃은 일본인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일본에 한병국 꽃 그림 매니아, 어드바이저가 수백명이다.

그는 일본으로 그림을 보내느라 거의 매일을 꼬박 화실에 머물러도 모자랄 정도다.

소품같은 경우 두달에 50점씩, 1년이면 300점씩 일본으로 보낸다.

“일본의 그림 시장은 우리나라 보다 약 50년 정도 앞서 있어요. 어떤 특정 계층이 누리는 호사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누구나 그림을 즐깁니다. 주부나 회사원들이 할부로 작품을 구입하는 모습도 전혀 낯설지가 않아요.”물론 대작의 경우는 몇 달에 거쳐 작업이 이뤄진다. 홍대 전철역에 걸려있는 300호 짜리 대작은 도시의 에너지가 마치 붉은 꽃 무더기 처럼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붉은 원에 심취
“일상 생활을 하면서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일할 때 기라는 것이 소멸되는데, 붉은 색은 힘을 솟게 하고 기운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붉은 색은 화합, 통일, 전진, 순수, 맑음 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한병국은 요새 붉은 색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붉으면서도 더 아름다운 색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렇다고 꽃송이마다 다 붉은 것은 아니다.
그가 바닥에 펼쳐놓고 작업 중인 그림은 노란 꽃이 화면 중앙에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붉은 꽃 속에 쌓여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한병국은 같은 꽃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처럼 변화와 리듬을 주고, 그래서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은 생동감 넘치는 꽃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의 화폭에 얼마나 많은 붉은 꽃들이 중첩돼 있고, 그 가운데 얼굴과 색이 다른 얼마나 무수한 꽃들이 날아다니는 지를 보는 것은 한병국의 마음의 정원을 꿰뚫을 수 있는 관람자의 몫일 뿐이다.

원의 형태는 붉은 색과 함께 영원히 솟구치는 기운, 생명의 상징이다. 톱니처럼 계속 맞물려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기운과 힘을 생성시킨다.

한병국의 그림은 그의 의도대로 보고만 있어도 기운이 솟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꽃의 이미지
“그림 그리는 혼과 기운이 그림 속에 내포돼 있는가에 따라 그림에 생명감이 살아납니다. 같은 꽃을 그려도 향기가 있지요.”

뿌리거나 번지는 기법, 혹은 헝겊을 붙이는 다양한 화법을 통해 표현되는 그의 그림에는 한병국의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각 작가인 그의 아내 노경이씨는 “구도와 묘사 뿐만이 아니라 우연적 효과 및 마티에르의 효과를 통한 기법까지 포함해서 보아야 남편 그림의 제맛과 제멋과 제 가치를 볼 수 있어요. 특히 남편 그림의 아름다움과 강인한 색상의 활용에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회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열정적 심경이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열정적 심경이 한병국 그림의 본질이며 또한 카타르시스의 마력이다.

그가 대작을 그리는 화실은 따로이 있다며 길을 나섰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곤지암 들녘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거슬러 돌고 돌아가며 한참을 가다보니 깊은 산속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생긴 터전에 그의 화실이 자리하고 있다. 항아리와 장작들이 화실을 둘러싼 산과 조화롭게 어울린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경치를 보면서 숲과 꽃 자연의 이미지를 얻어 비구상으로 표현합니다. 자연에 숙달돼 있지만 늘 못 봤던 것을 다시 보게 되지요.”

100번을 보면 볼 때마다 달라 보이는 자연. 한병국은 산과 들에다 물감을 풀어 붓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