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일렁임처럼 인생의 격정을 설명해줄 그 무엇이 있을까. 삶은 누구에게나 고난의 연속인 것. 그래서 더더욱 역경을 이겨낸 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아닌지. 평생을 봉사활동에 바친 이해숙씨(47·수지고 교사)의 삶이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편을 잡은 지 이제 16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의 봉사인생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지독히도 가난했던 충북 괴산의 고향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친이 돌아가신 후 생활이 어려워져 중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하게됐죠. 어린 나이에 살림을 도맡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연스레 농촌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스물두살이란 늦은 나이로 다시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괴산군 4H연합회 부회장’과 ‘마을부녀회장’을 지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학교입학 후‘화장품 외판원’을 하며 만학의 꿈을 키웠다. 당시 중학교 과정을 수료했던 ‘성신고등국민학교’는 ‘구두딱이’ ‘신문팔이’를 하는 어려운 여건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가난했지만 누구보다도 우리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이해숙씨는 “그들을 통해 우리사회를 위해 평생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해숙씨는 이후 대전여고 재학시절 ‘피얼스 영아원’에서의 봉사활동이 계기가 돼 대학 졸업 후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과의 인연을 맺는다.
대학원 졸업후 자신의 봉사체험을 본격적인 사회복지 이론과 접목시킨 이해숙씨는 자원봉사전문가의 입장에서 학교사회를 변화시켜 나간다.‘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학부모봉사단’ ‘교사봉사단’ 등은 교사와 부모가 아이들 교육에 있어 하나로 연결되는 매개체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봉사체험을 통해 틀에 박힌 제도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실천할 수 있었죠. 처음부터 이러한 활동이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료교사들의 냉담한 반응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 됐다. 전국단위 40여 차례의 강의를 소화하며 ‘30년 자원봉사활동’을 결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숙씨는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을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막내딸에게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을 때였다고 한다. “천진한 어린 딸의 말 한마디가 누구의 말보다 소중하고 고마웠다”는 그는 “아무 대가 없이 일할 수 있는 마음의 풍요가 자신의 인생에 보람과 행복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해숙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 포곡에 있는 중증장애아 요양소인 ‘요한의 집’에서 학생 20여명과 학부모들을 이끌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중증장애아들의 가정체험이 절실하다고 느낀 그는 이제 갓 세 살된 중증장애아 양태권군을 양아들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가족주의·이기주의의 구태를 벗어나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일궜으면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역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봉사활동의 활성화를 통해 살기 좋은 용인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의 다짐이 내일의 용인을 기대하게 한다.
시부모를 모시며 사는 이해숙씨는 남편 김홍목씨(49·동서여중 교사)와의 사이에 딸만 셋을 두었다. 남편은 현재 ‘수원전교조중등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