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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민이여 궐기를 준비하자

용인신문 기자  2000.08.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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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여 궐기를 준비하자

<이우현/용인시의회 부의장>

지난 8월 5일 모 일간지에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기사화 됐다. 내용인 즉 수원시에서 용인시의 영덕·신봉지구를 건설교통부와 행정자치부에 수원시로 편입해 달라고 건의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장터지게 하는 소리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몰염치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가.
수원도시계획이 수립될 당시인 69년도에는 용인이 비교적 낙후되어 아직 독자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기흥의 영덕리와 수지의 이의리, 하리를 비롯한 상현리, 신봉리, 성복리 등의 지역은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으로 고기리 지역은 성남시 도시계획구역으로 편입되어 최근에 이르렀다.
그 동안 수원시는 이의리, 하리지역의 행정구역을 편입해 갔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직전인 95년도에는 용인군의회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영덕리 일부지역마저 빼앗아 갔다.
그리고 땅 빼앗기에 재미를 붙었는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덕리와 상현리 지역까지 넘겨 받겠다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계획구역분쟁이 용인시와 수원시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도내에 신흥도시가 탄생하면서 안양시에 묶여있던 도시계획구역을 군포시와 의왕시가 97년도에 넘겨 받았고 안산시로 묶여 있던 도시계획구역을 시흥시와 군포시가 96년도에 이미 넘겨받았으며 성남시로 편입되어 있던 고기리의 도시계획구역을 99년도에 용인시가 넘겨 받았다. 현행 법규에 행정구역과 도시계획구역은 일치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명백히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건만 수원시는 주민의 생활권을 운운하면서 용인시의 일부지역을 자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부리고 있다. 그네들의 논리대로라면 서울이 생활권인 서울의 인근시 행정구역을 몽땅 서울시에 넘겨주어야 한다. 저들 같으면 인근시에서 부당한 요구를 해올 경우 자기네 행정구역을 선뜻 내어 주겠는가?
지난 96년 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우리 용인도 이제는 독자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 도시계획구역 변경안이 경기도를 거쳐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승인이 떨어지게 되면 영토분쟁의 불씨가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으로 판단되자 수원시에서 어불성설의 건의서를 중앙부처에 제출하게 된 것이다. 경계지역의 경우 전국의 어느 시·군이나 교통, 통신, 학군 등의 생활권이 다를 수 있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건설교통부의 실무진들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현상을 모르고 용인시 도시계획구역 변경안을 승인하지 않는 오점을 남길 리 있을까?
최근 우리 의회가 지난 95년도에 강압적으로 편입해 간 영통지역을 반환 받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염장을 긁어 놓는 그네들의 처사에 맞대응하여 그 부당성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이다.
도대체 수원시는 용인시민을 뭘로 보는가?
만에 하나라도 우리시의 도시계획구역 변경안이 수원시의 허튼 건의로 인해 승인되지 않는 일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좌시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바보의 길로 전락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용인시민이여,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뜻과 힘을 모으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총궐기를 준비합시다.

**나도칼럼리스트

13년의 용인의 생활-정든 공직사회를 떠나며-

내 생에 처음으로 용인 땅에 발을 딛은 것은 지난 87년 9월23일. 경희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최초로 발령을 받은 곳이 용인시 원삼면 죽능리 보건진료소였다. 그 동안 준비해온 내 작은 삶이 후회나 미련은 없었지만 공직생활을 막상 떠나고 보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돌이켜보면 초창기의 나의 모습은 열의와 성의로 가득 차 무엇이든지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만의 만족이었지 진정 우리 주민들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시절을 보낸 채 20개월을 보낸 후 89년 5월 남사면 아곡보건진료소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터 1380여명의 우리 관내 주민들은 나의 가족이었으며, 나는 그들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친절은 기본이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10년 이상 늘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발령 초 동네 이병옥 할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 중 차안에서 혈압으로 인한 오물(구토)을 손으로 받아가며 후송해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회복돼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시고 있다. 간혹 새벽 2∼3시에도 왕진을 가야하는 환자가 발생해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주민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서였다.
그러나 13년이란 세월의 흐름 속에 나는 진정 이 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직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나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