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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종된 지방자치

용인신문 기자  2000.09.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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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지방자치

<민병국/용인신문 발행,편집인>

난개발 광풍과 사정의 한복판에 서있는 우리 용인시를 보면 여전히 암울한 생각이 든다. 새천년엔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건만 아쉬움만 더해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진절머리 나도록 계속되는 비리공무원 이야기, 난개발 오명과 연일 쏟아지는 집단민원 등은 용인지역사회의 불안정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방자치는 비단 우리 용인시에서만 실시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지역에 대한 애향심의 체감을 논하자면 썰렁하고 황량하다. 단순히 지방자치제도 실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급격한 개발과 무한한 발전잠재력 때문에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이거나 개발논리에 쓰러지는 지역정서등이 한몫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1일엔 구성면이 구성읍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말만 읍승격이지 민원행정서비스의 질적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는 게 공직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수지읍 역시 인구 10만명을 넘은지 오래됐으나 서기관급 읍장만 앉혀놓고 공무원 정원수에는 변화가 없는 상태다.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말로만 읍승격이다 과대읍이라고 했지 구조조정으로 인해 축소된 공무원 정원수는 여전히 동결돼있다. 오히려 구조조정전보다 행정수요가 더욱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사회의 염원이었다. 물론 10여년밖에 안되는 역사를 감안할때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용인사회에서 발생되는 비현실적 상황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경직된 공직사회 논리때문이라면 문제는 틀릴 것이다. 계절만 바뀌어도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기본적인 변화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이 변화되고 특히 용인시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음에도 제자리 걸음으로 머무르는 것은 상대적 평가의 의미에서는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비단 용인시 공직자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통감해야 한다.
용인시나 시민들의 욕구를 옥죄이는 것은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중앙정부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다. 상급기관들이 꿈쩍을 하지 않고 있으니 권한이 턱없이 부족한 자치단체로서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지방자치는 요연한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조차 인식 못하는 지방자치제도와 이를 통제하는 중앙정부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희망을 읽을수가 없다. 행정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직사회에서 인력난을 호소할때도 행자부는 형평성을 빙자한 중앙집권적 발상만을 고집하고 있다. 결국 자치단체 죽이기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행자부는 이제라도 전국의 지자체간 형평성만 따지지 말고, 능동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대들이 잘 알고 있듯이 용인지역만큼 행정수요가 많은 곳은 전국에 없다. 인구증가율만 보더라도 단순 행정행위를 제외한 각종 민원발생 증가율도 전국에서 가장 많을 것이다.
우리가 정작 우려하는 것은 지역사회 정서가 황폐화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아직도 용인시 면적의 반이상이 농촌임에도 지역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도시를 탈출하는 도시민들의 배수구로 전락했다는 피해의식만 팽배해지고 있다. 인구분포도 역시 원주민의 비율을 훨씬 넘어섰다. 또 새롭게 전입한 시민들은 전원도시에 대한 각종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새내기 시민들은 집단민원을 통한 행정기관과의 충돌로 인연을 맺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군다나 무분별한 도시개발 과정에서 공직사회 내부가 비리의 온상처럼 인식돼온 것도 문제다. 이로인해 많은 공직자들이 매도당하는 것도 문제다. 물론 책임을 묻는다면 용인시의 책임도 매우 크다.
용인시는 이제부터라도 도시의 발전상보다는 대책과 지역공동체의 비전을 위한 정체성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 난개발의 광풍과 사정의 칼날만을 탓해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들이 어느 자치단체에서 살든 공히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더이상 지방자치의 실종을 두고 바라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