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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명현의 얼

용인신문 기자  2000.09.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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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순례(3) 사은정

고층아파트 건축공사로 어지러운 민속촌 입구를 지나 기흥읍 지곡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두암산(斗巖山)이라고 불리는 아담한 산기슭이 있다. 민속촌 옆을 지나 상하리로 연결되는 새로 생긴 도로가 이 산 허리를 잘라서 관통하는데, 도로 왼쪽에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간판이 서있고 그 옆에 사은정(四隱亭)이라고 적힌 조그마한 돌로 된 안내판 눈에 들어온다. 이 곳까지 오면서 어느 곳에도 사은정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조차 없다.
사은정은 조선 중종조의 명현이자 대성리학자이며 동방사현으로 칭송되던 정암 조광조를 비롯하여 당시 유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던 방은(方隱) 조광보(趙光輔)와 회곡(晦谷) 조광좌(趙光佐) 그리고 음애(陰崖) 이 자(李  ) 등 네 분들이 모여 세상사를 논하고 학문을 닦던 유서깊은 곳이다. 이 네 분들은 이 곳에 터를 잡아 정자를 짓고 어울려 서로 도의로써 사귐을 맺어 서로 즐거워하며 왕도정치의 구현을 논하고 그 이념을 완성하였는데, 이 곳이야 말로 그 분들이 후에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과 이상정치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정신과 얼이 깃들어 있는 요람인 셈이다.
사은(四隱)이라고 한 것은 산수가 아름답고 풍광이 좋은 이 곳에 자리를 잡아 농사를 지으며(耕), 나무를 하고(薪), 낚시를 하면서(釣), 나물을 캐는(菜) 네 가지 낙(樂)을 즐기면서 은거하겠다고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본래 사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판장벽체가 있으며 온돌방이 달려 있다. 전면에 퇴를 달았고 팔작지붕에 단청이 있으며 한식 골기와를 얹었던 전통 한옥으로 우물마루에 난간을 돌렸는데 향은 정동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퇴락하여 이를 헐고 다시 짓기를 거듭해 오다가 이제는 어느덧 주초석과 계단마저도 시멘트 블럭조로 바뀌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정자에 이르는 곳곳에 뻗어내린 칡넝쿨과 무성한 잡초가 새들의 오물이 잔뜩 묻은 정자 기둥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주는 것 같아 보기가 영 딱한 게 아니다. 그나마 한양 조씨와 한산 이씨 문중에서 서로 힘을 합쳐 이 정자를 복원,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가문 후손들은 지금도 서로 한 집안처럼 가까이 지내면서 가끔 이 정자에서 회동하여 선대로부터 맺어진 정을 이어오고 있어 명가다운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은정기(몃徐錮?를 보면, 본래 이 정자가 있는 두암산 기슭을 가리켜 "높은 절벽과 층층한 바위에 맑은 시냇물과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하였는데, 이제는 정자 바로 건너편에 골프장이 들어선지 오래이고 새로 도로를 만들면서 그 좋은 경관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지곡리 계곡을 따라 사은정 앞으로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은 변함없이 그 청정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옛날 풍광이 좋아 숨어 살만 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고 읊었던 명현들의 뜻이 무색하게도 이제는 정자 옆을 가로질러 새로 뚫린 길로 밤낮없이 지나다닐 수많은 자동차 행렬을 생각하면, 네 가지 즐거움을 벗삼아 은거하여 세상일을 논하고 학문을 닦던 심산유곡의 은둔처를 무지한 우리들이 세상 밖으로 강제로 끌어낸 듯하여 조상들 대하기가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