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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면 신사작업기념

1945년 사진…신사참배 실체 확인
사진으로본 용인, 용인사람들4 남사면 신사작업기념

용인신문 기자  2008.08.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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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실시했던 신사 재정비 사업의 실상을 증빙하는 자료이다. 이제까지 용인에서는 각 지역의 신사터만 노인층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사진의 발굴로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 한국에서의 신사참배 실시와 황민화정책
일본인 거류민을 대상으로 국내에 처음 들어온 신사제도(神社制度)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한국인들에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기반으로 확대되었다.

총독부는 1915년 신사사원규칙(神社寺院規則)을 공포하여 한국에 들어온 모든 신사의 정비와 증대를 꾀했다. 이를 기반으로 1925년에는 조선신사가 조선신궁(朝鮮神宮)으로 개칭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때는 내선일체를 표방한 황민화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신사참배는 그중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국민의 사상통제가 본격화되어, 신사 중심으로 애국반이 편성되고 신사 참배, 궁성요배, 국기게양,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제창, 근로봉사의 월례행사가 강요되었다. 또한 각 가정에 신붕(神棚) 설치, 신궁의 부적 배포가 강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경찰 안에 감시대를 조직하고 애국반 안에 밀정조직을 만들어 이를 감시하게 했다. 한편 1936년 8월 신사제도 개정에 대한 칙령이 발표되어 황민화정책의 상징으로서 신사제도가 행정구역별로 재정비·신설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에 524개였던 신사가 1945년에는 1062개로 급증했다. (수집 정리: 홍순석 교수, 사진제공: 홍승혁)
* 사진자료 제공 및 문의는 hongssk@kangnam.ac.kr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