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 늦은 귀가길 // 나는 불경하게도 /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 자꾸자꾸 폭설로 지워주신다.” 「‘폭설’ 전문」
어느 시인은 공광규(48)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 펴냄) 첫 페이지에 실린 ‘폭설’을 ‘소주병’ 이후 최고의 절창이라고 탄복했다. ‘폭설’은 시인의 시쓰기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다.
시인은 자신의 산문 ‘양생의 시학’에서 “시 쓰기 조건은 가장 먼저 정직한 마음이 담긴 시 쓰기가 아닐까 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려한 서울 도심 한복판을 거대한 야생의 도시로 변모시키는 표제작 ‘말똥 한 덩이’의 상상력은 또 어떤가.
“청계천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놓았다 /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 말똥이 퍼져 멀리멀리 뻗어가고 있다 /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 조각들 /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어가고 /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말똥 한 덩이」 전문
시인은 말똥 한 덩이로 현란한 수사 없이 단번에 전복적 이미지를 그려냈다. 시인의 특징은 투명한 시어를 사용하면서도 정치적 구호 대신에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꿰뚫거나 뒤집는다는 것에 있다.
도종환 시인은 추천의 글을 통해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좋은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모순 앞에 정직하고 진솔하다”면서 “공 시인은 상처와 아픔을 불교적 서정으로 덮는 내공도 깊을 뿐 아니라, 흔들렸다가는 다시 수평으로 돌아오는 수면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는 사유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현재 계간 『불교문예』편집주간과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 시창작 강의를 맡고 있는 공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고, 이번 새 시집 『말똥 한 덩이』는 화제의 시집이었던『소주병』(2004)이후 4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