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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의 주요 관광 상품은 ‘유유자적’ ‘숨쉼생’

특집 | 관광용인, 유후인에게 묻다-하
-유후인, 유후인 사람 나카야 겐타로-

용인신문 기자  2009.0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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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1만2000여 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마을에 영화제가 열리면 이를 보기위해 삼천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전국규모의 이 영화제에는 관객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제작한 배우 감독 작가 등 영화생산자들이 모두 참여한다, 이들은 한데 모여 상영회를 하고 밤 새워 심포지엄을 하고 야외파티를 하며 몇날 며칠을 함께 하는 것이다. 작은 마을에는 열다섯 개나 되는 미술관이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처음부터 미술관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구청에서는 돈이 있어야 미술관이 되는 줄 알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벽과 그림만 있으면 된다는 배짱으로 시작 했습니다. 화가들과 인맥을 통해 이런 운동을 전개했고, 오늘날 마을 전체를 예술촌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창조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 ,통합된 기획능력이 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처음 농촌에 돌아왔을 때 농촌은 망하고 있었고 처참했지요. 오늘의 유후인이 있기까지 40년 걸렸고 우리는 앞으로도 최고의 것을 만들어 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허물어뜨리는 촉매제가 되고 싶습니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이곳에서 나가는 바람, 그 바람의 접점에서 생성되는 것, 이거 상당히 추상적인 말인데 이해하시겠습니까”

최고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일본인다운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그러나 바람의 접점이라는 추상적인 말은 언어상의 장애 때문인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우리는 밖으로 좋은 것을 내보내고 밖에서 또 좋은 것이 들어옵니다.”라는 그의 말로 미루어 그 의미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유후다케라는 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분지마을인 유후인에게 바람의 의미는 특별한 것 같다. 바람의 식탁, 바람의 들 등. 이들이 즐겨 표현하는 바람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그 바람은 만나 섞이고 합쳐지면서 새로운 바람을 수없이 일으키고 파장을 이루어, 미래로 약동해나가는 기운이란 뜻이 아닐지. 분지의 폐쇄성을 분지의 개방성으로 뒤바꾼 역설적 힘처럼.

그는 한국의 농촌이 쌀 개방으로 위기에 처해있으며 정부나 농촌에서는 대안책 중의 하나로 팜스테이라는 그린튜어리즘, 또는 농촌생활관광에 그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일본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후인을 이룩한 것은 행정의 지원도 외부의 자본도 아닌 바로 주민들의 힘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골프장 건설을 반대했고, 거대자본을 사절했다. 작은 것들이 거대자본에 먹히는 것보다는 작은 것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개발은 잠깐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 위주의 개발이 아니었다. 지역주민이 그 터전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고 주민들의 삶과 질을 높여가는 주민의 질이 담보된,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인정과 옛것과 소박함이 그리고 가장 건강한 식품이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된다는 것, 개발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개발이라는 이 단순한 명제를 믿고 마을을 지켜온 유후인 사람들. 새로운 패러다임, 발상의 전환은 지금 한국에서도 필요하다. 유후인이 일반 관광지와는 달리 차분하고 안온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일상적 삶, 생활양식 그 자체가 상품이었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겐타로를 만나고 난후 지금 그의 집에서 한국과 관련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해서 들어가 보니 두 명의 여성이 ‘안녕, 사요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작은 집 응접실만한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 그것은 돈이 없어도, 공간이 없어도 무엇인가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장면이었다.

‘쉼’이라는 갈망을 관광상품으로
상업화된 온천 단지. 단체 관광객들과 유곽들이 들어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도 지금은 몰락한 관광지가 되어버린 벳푸 온천과는 달리. 유후인에는 오늘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도시 하나를 완벽한 일본속의 네덜란드와 똑같이 재현한 규슈의 관광지 하우스텐보스는 가화의 인조도시 같아 안내사진만 보고도 질려 가보고 싶지 않다.

유명한 교토의 청수사라는 절에서는 태내체험이라며 컴컴한 굴 안으로 들어가게 해놓고 돈을 받는 관광체험도 상혼에 속은 것 같아 불쾌하다. 일본 신사에 걸린 천 엔 또는 오백 엔짜리 울긋불긋한 나무토막에서는 노골적으로 상품화된 기복신앙을 보는 것 같아 느끼함마저 올라온다.

욕망을 자극하고 도발시키는 후쿠오카 캐널시티에서는 세속도시의 어지러움만을 느꼈을 따름이다. 관광지가 들어서면 유흥산업이 번창하고 유흥가가 번창 할수록 주민들의 삶은 와장창 망가진다. 그러나 유후인에서는 그 번창과 와장창의 함수관계를 체감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관광컨셉은 지나간 과거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디자인된 삶의 양식을 체험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의식주에 필요한 생필품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인간의 생명현상인 ‘숨 쉼’은 생필품이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임에도 상품으로 살 수 없다. 유후인의 선진성은 피로에 지친 현대인의 새로운 욕망, 쉼이라는 갈망을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녹색 관광 상품을 창출해 내었다.

유후인에는 환각과 도발과 천박함과 들뜸이 없다. 그래서 유후인의 주요 관광 상품은 <유유자적>이고 <숨쉼생>이다. 고급호텔에 묵으며 돈은 돈대로 쓰고 더욱더 피로해지는 허망한 관광이 아니라, 숨(觀),쉼(休)이요, 새로운 삶의 충전(生)이다.

그곳은 국적을 넘어 돌아가 쉬고 싶은 외가 같은 고향의 원형으로서 다가온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린 내 땅에서 거대한 물량주의가 지배하는 삶속에서 삶의 속도에 현기증이나 그저 어디 가서 숨 좀 쉬고 싶을 때, 문득 유후인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재방문자 70%에 속하게 될 지.
안일순 | 작가·학일정보화마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