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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출절의 넋

용인신문 기자  2000.1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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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순례(15) -정몽주 묘

역사에 길이 남은 충절의 넋(2)

선생은 1357년(공민왕 5)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됨으로써 본격적인 벼슬길에 올랐다. 당시 상제(喪制)가 문란해져서 사대부들이 모두 백일 단상(短喪)을 입었지만, 선생은 홀로 부모의 상에 여묘(廬墓)를 살면서 그 슬픔과 예절을 모두 극진히 하였기 때문에 1366년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이듬해 예조정랑으로 성균관 박사를 겸임하면서 『주자집주(朱子集註)』에 대한 선생의 강설이 매우 뛰어났으므로 대사성 이 색(李 穡)이 정몽주(鄭夢周)를 높이 여겨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라 칭송하였다.
또, 당시에는 왜구의 노략질이 매우 심하였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조정에서 왜의 본거지인 구주(九州)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려 함에 모두들 위태롭게 여겨 가기를 꺼렸으나, 선생은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구주로 건너가 교린(交隣)의 이해를 개진하여 사명을 다하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왜구에게 잡혀갔던 백성 수백명을 귀국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그리고 1380년에는 조전원수로 이성계를 따라 전라도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와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