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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누구인가

용인신문 기자  2001.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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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김건흡/수필가, 수지읍 풍덕천리>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난 누구예요?” 아버지가 대답한다. “나도 물러!”
소위 요즘 뜨고 있는 광고의 한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고 생각없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나 아무리 웃고 넘기는 광고라지만, 어딘지 ‘정체성’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또 새해를 맞는다. 이 해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사건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숨가쁘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속도’로 그 가치가 평가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삶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그 가속도를 이겨내지 못하면 낙오되는 세상의 논리. 그 논리앞에 서면 공동체적 정서나 함께 나누는 즐거움은 무가치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장단을 제대로 따라 할 수 없다. 그저 헛놀림, 헛시늉만 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과 주위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자기 성찰적인 사고가 빈곤해지는 시대. 세상은 그걸 수용하지 못한 채 안으로 곪아가고, 닫힌 세상의 문턱에서 사람들은 들뜬 어조로 닫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오?문단속을 확인해야 잠을 이루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열려진 마당에서 목놓아 부르는 노래는 애초에 과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겸허하게 되새기고 싶은 물음이 있다. 왜 우리는 후미진 구석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정서를 추스려야 하는 걸까? 물만 부으면 일분만에 요리가 되는 인스턴트 식품처럼, 혹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삶, 그리고 정서를 팔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제도나 형식이 인간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없고, 제반 질곡에 대해 아무런 빛이 될 수 없으매, 이제 우리는 내면에서 그 빛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삶이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폭력적이며, 또 비논리적인가? 모순은 모순을 낳고, 이러한 악순환은 소박한 삶을 누리고픈 소망마저 사치스러운 욕심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르트르가 말했다던가. “오늘도 어제와 같다. 역사는 무의미하다. 인생은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실존의 독백으로만 들리지 않는 오늘이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그렇고 그런 문제로 그만 그만하게 다투고 우기는 되풀이야 언제고 없었으랴! 다만 서글픈 것은 그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맑은 말의 메아리가 지금 우리에겐 적막히 들리지 않고 있음이다.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과거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빠른 삶의 속도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정보화사회에서 이 현란한 삶의 속도에 뒤쳐지는 것은 곧 낙오와 패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러한 속도감의 획득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는 그런 관계성의 회복이 아닐까? 자연과 하나로 만나 호흡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활 속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해 나가는 경이로움이야 말로 그 어떤 정보의 바다에 빠지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