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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박후기 시인 두 번째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김종경 기자  2009.08.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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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박후기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창비)를 냈다. 2006년 첫 시집 <종이는 나무 유전자를 갖고 있다>를 낸지 3년만이다. 첫 시집으로 신동엽 창작상을 받은 박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 처연했던 가족사와 불편부당한 현실, 그리고 내면에 깔려있는 사랑이야기까지 절제된 시어로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거친 듯하면서도 “묵정밭의 해바라기가 종의 기원으로부터 몇 번째 씨앗의 껍질을 깨고 나온 꽃인지”를 궁금해하는 천성적인 시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은 ‘가난한 아버지와 기지촌의 젖은 풍경들, 그리고 사춘기의 우울과 불우했던 청년시절을 묘사’했던 첫 시집보다 서정성이 강화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혈육과 가족에 집착하는 시인은 ‘비천한 삶의 토대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지도 깊숙한 곳, / 마음 가장 깊은 곳에 / 미산이 있다 / 그곳은 강원도의 내면(內面), / 미월(未月)의 사람들이 / 검은 쌀로 밥을 짓고 / 물살에 떠내려가는 달빛이 / 서어나무 소매를 적시는 곳 / 나는 갈 곳 몰라 / 불 꺼진 민박에 방을 얻고, / 젊은 내외는 버릇없는 개를 타이르며 /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 멍든 개가 물고 간 신발을 찾아 / 어둠속을 뒤지는 밤, / 미산에서는 / 좁은 개집에서도 / 으르렁거리며 / 푸른 별이 빛난다”
시집 첫 번째 시 「미산」 전문이다. 시인은 그동안 강한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붙잡고 살아온 것 같지만, 그의 천성은 동물성보다 식물성이 강하다. 그는 서서히 강원도의 내면을 닮은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엄경희씨는 “박후기의 시세계는 관념도 상상도 아닌 바로 삶 속에서 확인한 경험들의 소산”이라며 “그는 자신의 근원적 내력에 충실한 언어를 통해 삶의 비애와 진실을 드러내고자 무너질 것 같은 실존성 앞에서 사랑을 열망하고 절망한다”고 말한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 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 / 날 알아볼 수 없으리라 / 늙고 지친 사랑 / 이 빠진 턱 우물거리며 / 폐지 같은 기억들 / 차곡차곡 저녁 살강에 / 모으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물리학 - 상대성원리」

정호승 시인은 “사물과 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줄 아는 진지하고 신선한 시인의 눈이 있어 새롭다”며 “한국 전통시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의 향기를 내뿜는 그의 시는 분명 한국 현대시의 새로움의 향기”라고 말했다. 창비. 124쪽.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