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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인의 시(詩)가 세상과 만난다

화제의 시집 - 홍사국 ‘잔디의 노래’
일상의 삶 담아 … 시작(詩作) 42년만에 결실

박숙현 기자  2009.11.09 15: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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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면에서 농사를 짓는 홍사국 농부 시인의 첫 시집 ‘잔디의 노래’가 불교문예에서 나왔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42년 만에 붉고 토실한 살이 오른 빠알간 앵두 같은 시집을 수줍은 듯 세상에 내놓은 홍 시인.

홍 시인은 55편의 시에 투박한 손으로 평생을 일군 삶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농부의 철학, 즐거운 농사일, 평생 고생 시킨 아내에 대한 미안함, 손주에 대한 사랑 같은 주변의 소소한 일상부터 진리에 대한 깨우침에 이르기 까지 그의 마음 길 닿은 시들을 모았다.


“콩밭에 골거지 하고 나니/ 콩들이 너훌 너훌 춤을 추고/ 깨밭에 골거지 하고 나면/ 깨들이 더덩실 춤을 추고/ 큰 논에 피살이 하고 나면/ 모들이 얼싸 춤을 추니/ 삼복에 흐르는 땀방울에도/ 더덩실 논둑에서 신명이 납니다”(‘골거지’ 전문)


“할매 할매 우리 할매/ 호미 잡고 밭매기를 평생 하더니/ 호미 공생이 휘어지듯 등이 굽었네/……” (‘굽은 등’ 전문)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마음을 텅 비운 채 유유자적하는 홍 시인의 모습이, 고운 마음씨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진리의 미소가 보인다.

하지만 홍 시인이라고 고되고 힘든 일상에 지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결코 세상을 원망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자족하는 삶을, 심은 대로 거두는 만족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각박한 현대인에게 잔잔한 진리의 경종을 울린다.


“……어찌 사연이 없고/ 고생이 없으랴 마는/ 모든 것을 흙 속에 갈아엎고서/ 싹틀 때를 기다리는 농부로소이다// 작물은 잘 썩은 퇴비보다/ 피땀 섞인 눈물을 좋아하지요/ 왜 그 힘든 농사를 짓느냐구요?/ 흙에는 참이 있고 보람이 있어……” (‘나는 농부로소이다’ 전문)


결코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고, 현란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경구 같은 싯귀들.

홍시인은 결코 어렵게 시를 짓지 않는다. “그 때 그 시절 그 마음을 노래한다”는 평소의 주문 같은 이야기처럼 그저 순간 일렁이는 마음의 움직임을 즉석에서 글로 옮기면 한편의 노래같은 시가 된다. 그를 누군가 천재라고 했듯 그는 정말 이 시대의 천재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