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감동이 있는 시 감상-26

용인신문 기자  2009.12.07 12:39:29

기사프린트

문인수 시인은 거침없는 어법의 소유자이다. 그의 상상력은 그러므로 그의 거침없는 어법에 얹혀 말달린다. 말은 갈기를 세우고 거침없이 초원을 가로지른다. 가끔 날카롭게 내려치는 문인수 시인의 채찍소리가 초원을 찢는다.

「꼭지」는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목숨의 지점이다. 예컨대 감꼭지가 떨어지면 감은 낙과가 되어 그 생명을 다 하는 것이다. 달팽이 같은 독거노인 할머니는 생의 꼭지가 다 한 목숨이다. 머지않아 꼭지가 돌아 떨어져 하늘 꼭대기를 넘어 갈 것이다.

그녀가 오르는 동사무소 길은 하늘 길일 수도 있을 것이며 생명의 길일 수도 있겠다. 힘에 부쳐 걷다가 또 쉬는 길에 민들레 한 송이 노랗게 피어 있다. 그녀의 기억의 끝이 노란 것이다.

민들레는 할머니의 현재의 모습이다. 젖배를 곯았던 아픈 유아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 한점 시간처럼 날아가는 새는 하늘 꼭대기를 넘어 가는 꼭지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김윤배/시인)

꼭 지

문 인 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아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 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 떨어져나가듯 저, 어느 한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