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애는 시간의 처음과 끝을 되풀이하는 수레바퀴다. 지금 또 다시 시간의 끝을 맞이하고 있지만, 끝은 바로 처음의 출발점이요 종착역이다. 고로 처음과 끝은 같은 것이니 어느 것에 무게를 더 둔다한들 무슨 상관이랴.
매년 연말이면 언론사에서는 한 해 동안의 빅뉴스를 선정한다. 매일 처음과 끝을 반복한 기억속의 시간들을 끄집어내 이미 잊혀 졌을지도 모를, 아니 잊고 싶어 하는 사건들까지 속속 끌어내는 일이다. 전 세계와 우리나라 뉴스, 그리고 지역 뉴스까지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역사와 시간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잎 새를 보고 슬퍼하거나 존재의 이유 또는 인생의 무력함에 몸을 떠는 사유의 동물이 인간이다. 마지막 잎 새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순회임을 모르는 바 아닐진대. 지나간 시간들을 백지위에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릴 것이 없다. 그렇다고 다가올 시간 역시 마땅히 그릴 것이 없으니 이를 어쩔까.
무상무념(無想無念). 몸도 마음도 비워야 건강하거늘, 정작 우리는 채우지 못해 발버둥치는 소유의 노예가 되어 온갖 영육의 질병으로부터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종교와 국가와 학교도 권력과 명예와 부를 쫓고, 가정과 개인 역시 무형의 권력집단이 그려놓은 로드맵을 추종하지 않고서는 생존의 위협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복잡 다양한 사회에서 일탈을 꿈꾸다보면 종단의 이단아보다 더 외롭고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기계의 부품처럼 어딘가에 꿰맞춰져 살아가지 않고는 존재이유조차 자멸해 갈수밖에 없는 세상이기에.
유니세프의 광고 문구를 보고 있자니 세상, 아니 인간의 양면성과 인류애를 부르짖는 수많은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의 허울이 느껴진다.
‘첫 울음을 토하며 세상에 태어난 아기…오늘 태어난 천 명의 아기 중 다섯 살까지 살아남을 아기는 몇 명이나 될까요? 선진국에서 태어났으면 995명이 살아남겠지만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이라면 천 명 중 270명이 다섯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굶주림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 970만 명이 매년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어디 이 뿐인가.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서는 인간생명을 담보로 혈전을 벌이는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매년 수천 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지만, 전쟁 뒤에 숨겨진 경제와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인류 최초로부터 이어진 전쟁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리라.
이 같은 인간세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연의 경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올랐어도 세계 정상들은 뚜렷한 대책마련을 못한 채 눈치를 보며 자국 이기주의로 일관하다가 올해도 환경 NGO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말았으니, 혼돈이다.
역사는 항상 인류에게 올바른 모든 길을 안내한다. 하지만 인간세계는 올바른 길을 믿지 않는다. 혹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다시 올 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동네에도 올 한해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으리라. 이 역시 해매다 되풀이되는 수레바퀴의 흔적에 불과할 것이니, 이맘때면 그냥 무상무념 무념무상(無念無想)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