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미 시인은 사물을 좀 삐딱하게 보는 눈을 가졌다. 그녀의 시간의 흐름은 직선을 이루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화하는 시간도 아니다. 실존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의 직선은 시간들은 ‘어제는 겨울’이고 ‘오늘은 여름’이며 ‘낮에는 가을’이고 ‘밤에는 봄’ 이다. 이처럼 그녀의 시간이 부러져 내리는 것은 그녀가 세상을 뻬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지금 거실의 쇼파나 안방에 누워 옛사람이 쓴 한시를 감상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와유(臥遊)라는 시제가 그걸 암시한다. 이 시에서도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이미 과거의 여자이면서 연시를 받게 될 남자는 미래의 남자인 것이다. 국화는 그녀의 다른 이름이며 가을비는 연서를 받게 될 사람일 것이지만 가을비인 그 사람은 이미 지난해에 다녀간 과거의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연서를 받은 그가 홀로 마시는 국화술은 슬픔의 술이 아닐 수 없다. 아련한 통증으로 오는 시편이며 안현미의 시편 중에서 봉건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시편이기도 하다.
와유(臥遊) |안 현 미
내가 만일 옛사람이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 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목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에게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