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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이 된 풍운아의 넔(3)

용인신문 기자  2001.0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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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순례(21) -어비우리(魚肥里)

이들이 경복궁 후문인 신무문(神武門)에 집결하면 이범진의 조카인 시위대장 이진호가 이들과 내통하여 신무문을 열어 주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 때, 궁내부 순사요 장사였던 유진구도 이 거사에 참여했다.
궁문을 열도록 이범진의 내통을 받은 이진호는 고민하다가 자신의 직접 상관인 어윤중에게 거사 사실을 알리고 지시를 받기로 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어윤중(魚允中)은 심사숙고한 끝에 양전지계(兩全之計)를 노리고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승낙도 부인도 아닌 대답을 들은 이진호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알아서 하라"는 말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게 없다. 그는 며칠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상관의 명령도 없이 궁문을 열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결국 신무문을 열어주지 않고 말았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거사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격렬한 접전 끝에 그들은 모두 현장에서 체포당했고, 유진구는 다행히 현장을 탈출하였으나 체포령이 내려져 있어 법망을 피해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유진구는 이 거사의 직접적인 실패 원인이 바로 어윤중의 우유부단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항상 복수심에 불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방랑 끝에 이 곳 용인(龍仁)으로 숨어들어 평소 의기가 투합되던 정원로의 집에 숨어 있다가 어윤중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진구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정원로는 분노했다. 당시 세간의 인심은 국모시해에 대한 복수의 열기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들은 정원로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정원로는 즉시 사람을 먼저 보내 집 주인 안관현과 내통케 하고, 자신은 유진구와 함께 동네 청년들을 이끌고 어윤중이 묵고 있던 사랑방을 덮쳤다. 그러나, 초저녁부터 심상찮게 돌아가는 마을의 분위기를 눈치 챈 어윤중 일행은 이미 떠나고 난 다음이었다. 흥분한 이들은 즉시 가마를 추적했다.
마침내 이들은 어윤중 일행이 처음 묵어가려 했던 「어비우리」주막 앞길에서 일행을 잡았다. 어윤중(魚允中)은 가마에서 끌려나와 지금은 저수지의 수문이 된 강변에서 몽둥이에 맞아 무참하게 타살되었고, 그의 시신은 다시 장작더미에 얹혀 분살되었다. 살찐 고기가 슬피 운다는 어비읍(魚肥泣)의 불길한 예감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 때가 설날이 며칠 남?않은 을미년 그믐께요, 양력으로는 1896년 2월 17일로 그의 나이 겨우 47세였다.
당시 「어비우리」에 살았던 주민들은 이 곳이 수몰되면서 그 위쪽 언덕배기로 이주하였거나 대부분 마을을 떠났고,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미 고인(故人)들이 되고 없다. 그리고, 섣달 그믐께 밤에 갑작스레 일어난 이 사건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대를 이어가며 구전(口傳)되었으나, 지금은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지금까지「어비우리」마을 강변에는 밤마다 「어 탁지, 어 탁지」하며 귀신 우는 소리가 들려 온다고 마을에서 만난 한 촌로(村老)께서 들려준다.
"저수지로 변한 지 오래됐는데 아직도 어 탁지 귀신이 웁니까?"
"물귀신이 되어 그런지 더욱 구슬프게 운답니다."
눈발이 날리는 저수지가에 서서 한 시대를 주름잡던 풍운아의 원혼이라도 달랠 수 있을까 하여, 준비해 온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로 뿌려 본다. 함박눈이 내리는 저수지의 겨울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발길을 돌리기가 영 아쉬운데, 눈발에 실려오는 바람 소리를 빌어 「어 탁지」의 원혼이 생전에 남기지 못한 말씀을 扁좋囹졍?듯하여 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빼 손을 들어 시린 귀를 쫑긋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