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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31 | 이문숙 '사십오분의'

용인신문 기자  2010.01.18 13: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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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숙 시인은 낮은 목소리를 지닌 시인이다. 그러나 그 낮은 목소리는 세상의 편견과 우리 시대의 불행을 위해 봉헌한다. 그녀의 시는 은유라는 이름의 교묘한 비틀림도 환유의 쭈빗거림이나 넉살도 없다. 그러므로 이문숙 시인의 어법은 강열하지 않으며 일탈하지 않으며 공격하지 않는다.

시인에게 주어진 ‘사십오분’은 시인이 끌고 가는 일생의 축소판이며 단축키이다. 그러므로 ‘사십오분’은 한 생의 상징이며 환유이다. 현실적인 ‘사십오분’은 아마도 여행 중에 주어진 예기치 않은 허방의 시간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일찍 놓여난 여가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시간은 예견된 시간이 아니어서 다음 여정까지는 무료한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들의 생애에 주어진 모든 시간량의 총화이어서 삶이 무료하기도 하고 통정으로 애를 낳기도 하며 낙타의 발걸음으로 사막을 건너기도 하는 것이고 불멸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일탈할 수도 있고 형광등을 깨뜨리고 도망칠 수도 있으며 양귀비씨가 터져 황홀한 아름다움에 취할 수도 있고 독 묻은 칼에 등을 내줄 수도 있는 것이 모두 ‘사십오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은 늘 심장이 벌떡거리고 혀가 말라붙는 긴장의 연속이며 서류를 찾고 모니터를 켜는 일상 속에 놓이는 것이다. 일생 ‘사십오분’을 이처럼 영악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여우일 것이다. 여우인 우리들은 비밀한 서랍 속으로 스미는 시간의 종말을 알고 있는 것이다.
(김윤배/시인)

사십오분의

이 문 숙

 무료한 것도 같아 졸린 듯도 해 눈을 감고 있으면 좋은 것도 같아 갑자기 할당된 이 시간을 뭐라 해야 하나 바니따스*, 해골 속에 꽃을 꽂을 수도 있어 용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

 사막의 별을 부르듯, 터번을 두른 자들이 느릿느릿 낙타를 타고 가면서, 고독 끝에 저절로 새어나오는 노래처럼, 낙타방울은 별들을 찔러대고, 어쩌면 돌이 되어 불멸을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

 고래가 아이를 유괴하여 물속에 데려갈 수도 있어 고장 난 수도꼭지가 물을 뿜어도 하루종일 신고도 없이 입을 다물 수도 있어 진흙탕에서 맨발로 뛰어다닐 수도 있고 형광등을 깨고 도망칠 수도 있어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 일과가 일찍 끝나버린, 갑자기 셔터가 툭 떨어지고 양귀비 씨가 터지고 어쩌면 아편을 할 수도 있고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고 독 묻은 칼에 맞을 수도 있는 이 시간

 사십오분의 허방 속에서도 심장이 벌떡거리고 혀가 말라붙는다는군 손은 서류를 찾고 모니터를 켠다는군 뒤집어놓은 서랍 속 여우야 여우야 뭐 하냐 서랍 틈으로 번지는 억지눈물 같은 황혼이라고 보고 있냐 반찬은 무슨 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