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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36 | 말과 당신이라는 이상한 액체 | 김소현

용인신문 기자  2010.02.16 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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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를 긁어대는 것이 손톱이 아니라 혀일 수도 있다
흘러내리는 붉은 것이 피가 아니라 달콤한 딸기 과즙일 수도 있다

뜨겁거나 차갑지 않기 때문이다 꿈틀대다 출렁이고
솟구치다 철철 넘친다

피부를 혀로 핥는다는 것과 껍질을 손톱으로 긁는다는
것의 차이 손놀림과 혀놀림의 차이
차이의 삐걱거림

당신은 입이 아니라 팔을 벌려야 하리라
당신은 속옷이 아니라 가면을 벗어야 하리라

말의 덩어리가 번져간다
말의 껍질이 틈새를 벌린다
말의 젖꼭지가 아리다

김소연의 시편들은 다양한 자아의 변주 속에 작은 우주를 연다. 그녀의 시는 자아가 놓인 공간의 진실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김소연 시인이 어떤 여정을 밟아 왔던 그 여정은 힘겨운 것이었으며 낡아가는 시간 위에 있었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투 위에 있었다. 그녀의 시편이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고통으로 우리들의 생을 위무하고 보듬는데 있다.

「말과 당신이라는 이상한 액체」는 당신이 지닌 허위에 대한 통열한 비판이며 말이 지닌 폭력성의 노래이다. 서로에게 환희였던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고통인 시간이 오는 것이어서 주고받은 상처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앉을 만하면 그 상처의 딱지를 들쑤셔 놓는 당신이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사랑법이며 살아가는 방정식이다. 주의 깊게 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그러므로 손톱과 혀는 상처를 헤집는 무기라는 점에서 동의어이다.
그러나 <말의 껍질이 틈새를 벌>리고 마침내 <말의 젖꼭지가 아리>기 시작하면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내게로 흘러들어 하나이게 하는 것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