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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37 | 가리봉오거리 연가 | 송경동

용인신문 기자  2010.02.22 15: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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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오거리 돼지껍데기집에서
가리봉 20년 지기들이 세월에도 굳지 않은
추억들을 투닥투닥 굽고 있다
노래도 한 소절씩 화덕 위로 올린다
한땐 선진노동자로 여름볕처럼 짱짱했지만
이젠 갈 곳 없이 변두리 운짱으로
일용노동자로 마찌꼬바로 떠돌며 사는 사람들

“밀리고 밀려, 쫓기고 쫓겨 단순조립공
꿈과 희망은 바스러지누나”*

이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꿰마추며
우린 다시 어떤 사랑을 깁고 있는 걸까
세상은 좋아졌다는데 아직도
맥주보다는 소주가 수월하고
집안 걱정 아이 걱정 일 걱정 하다보면
변혁의 주인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탈탈 턴 호주머니처럼 스산해지고
몇잔 술에 코끝 찡해
잊었던 팔뚝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아니었는데
개인이 되고 말았다는 서글픔만
* 노래 「단순조립공」중에서

송경동 시인은 노동현장과 투쟁현장의 시인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힘과 투쟁의 격렬함이 시편의 근간을 이룬다. 그는 이 시대의 부조리와 가난과 실의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래한다. 송경동 시인은 그의 노래가 빼어난 은유와 상징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송경동 시인의 시편들은 시 이전의 지시적 기능을 향해 깊이 반성과 사유의 송곳을 찌른다.

「가리봉오거리 연가」는 한 때는 선진 노동자로 짱짱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지금은 변두리의 운전수나 소규모 공장이나 일용노동자로 떠도는 실의에 찬 도시빈민의 노래이다. 세상은 좋아졌다지만 밀리고 밀려 이제는 꿈과 희망이 바스러진 단순조립공으로 혹은 일용잡부로 살아가는 가리봉 20년 지기들의 가난해서 서글픈 노래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