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장송곡
박연준
방안 가득 꽃이 피었다
무덤가에서나 필 꽃들이 뭔가 착각을 일으켰다
방 안 구석에 아버지 곰팡이로 피어나고
나는 밥을 먹는다
나 말고 나 비슷한 것이 밥을 먹는다
아버지, 옆구리에 박힌
곰팡이꽃 그 흉흉하게 아름다운 빛깔을
반찬으로 삼아도 될까요?
잘려나간 발가락 한 입 베어먹어도
당신 무성한 백발 한줌 쥐어 이 빈 그릇들
북북 문질러 닦아도 될까요?
내 어린 손으로 활짝 핀 아버지를
꺾는다, 자귀나무 꽃이 붉으니
아버지 깊은 잠에도 꽃물 들겠지
나 죽으면 꽃잎처럼 하르르 떨어져내릴
아버지, 운 나쁜 나의 애인
나는 당신의 운명을 점지하는 무당이니
아버지 용서하세요, 나는 귀신을 알아봐요
눈감고 토닥토닥 병을 기르는
아버지 돌아가신다, 환하게
박연준 시인의 콤플렉스는 앞선 시인들, 예컨대 박서원이나 김언희나, 김민정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의미망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혹은 남성, 아버지에 무참하게 당하는 어머니 혹은 여성, 아버지에 대한 딸의 성적 욕망의 희화화를 통한 아버지의 혹은 남성성의 부정이라는 밑그림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박연준 시인은 콤플렉스를 시작의 에너지로 삼아 시세계를 구축하면서 여성성의 재발견과 자기 부활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앞선 시인들과 차별화 된다.
'봄의 장송곡'은 박연준 시인이 아버지와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며 화해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픈 아버지 방안에 가득 핀 꽃은 아버지의 상처에서 피어나는 고름꽃일 것이다. 어린 딸은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며 아버지 옆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 <나 말고 나 비슷한 것이 밥을 먹는다>고 한 것은 어린 딸의 분열된 자아이며 아버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타자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 손으로 아버지의 환부를 수습하는 딸은 머지않아 아버지가 운명할 것을 안다. 그리하여 <아버지, 운 나쁜 나의 애인>은 환하게 죽음을 맞고 어린 딸은 아버지의 임종을 보는 것이다.(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