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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40 | 쓸쓸해서 머나먼 | 승자

용인신문 기자  2010.03.15 12: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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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敎가 지나간다)

최승자 시인은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 그리고 이제는 소생하는 중이다. 그녀의 문법은 반역의 문법이었으며 남성적 어법이었으며 매혹의 언어였던 것을 기억한다. 최승자 시인의 시편들은 자유를 지향하는 거침없는 언어의 현현이었으며 강열한 도발적 이미지들의 고통스런 충돌과 절망적 화해였다. 그랬던 그녀가 긴 투병생활 끝에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은 그녀가 투병하며 겪어내게 된 시간과 역사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며 깨달음의 시편들로 읽힌다.0

표제시 「쓸쓸해서 머나먼」은 시적화자가 살아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쓸쓸하고 먼 세상인지를 우리들에게 들여준다. 삼천갑자동방삭이는 불사를 소망하는 인간의 욕망의 화신이며 유한한 생명체로서의 징표이다. 이 세계는 성자들이 살다갔고 종교가 존재했다. 종교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고 다만 인간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 그 머나먼 세계에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는 것이다. 지금 발붙이고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살아내기 참으로 아득하여 먼 세계이고 쓸쓸한 세계이다.           (김윤배/시인)